대학병원 간호사 박유이(38)씨는 3년째 교회를 떠나 있는 ‘가나안 성도’다. 직장과 가정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 속에서 교회 봉사는 의무처럼 무거웠다. 결국 지친 마음으로 교회를 떠났지만 신앙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박씨는 최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교회는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면 좋겠다”며 “교회가 신앙으로 쉼과 회복을 얻는 공간이 된다면 많은 가나안 성도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교회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많다. 대전에 거주하는 이성준(가명·26)씨는 “모태신앙이지만 유학과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졌다”며 “대학원 진학 후 본가와 멀어지면서 오프라인 예배가 부담스러워졌다”고 털어놨다.
늘어나는 가나안 성도, 그 원인은?
한국교회에는 ‘신앙은 있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목회데이터연구소(목데연)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약 27%가 가나안 성도다. 연령대별로는 20대의 45%, 30대의 35%, 40대의 36%가 교회 밖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과거 청년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던 현상이 30~40대로 확산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제도적 틀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큰 것이 원인”이라며 “신앙을 개인적으로 실천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3040세대의 경우 신앙을 떠나는 원인으로 ‘삶의 부담’이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직장 생활과 결혼, 육아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신앙생활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며 “이 같은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점점 더 많은 성도가 교회를 떠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안 ‘교회’로 3040 공략
이런 변화에 맞춰 가나안 성도를 다시 끌어안기 위한 한국교회 내 사역도 다양화하고 있다. 서울 강북구 우이중앙교회(윤용현 목사)에 있는 ‘로뎀교회’가 대표적이다. 로뎀교회는 3040세대를 위한 맞춤형 부서로 직장과 육아로 바쁜 이들의 특성을 고려해 교회 안 작은 교회 형태로 운영된다. 부서를 담당하는 정지호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가장 많이 교회를 떠난 세대가 30·40세대며, 이들은 신앙을 유지하고 싶지만 기성교회의 수직적 구조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교회는 ‘가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역을 전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철저한 아이 돌봄 시스템이다. 오후 2시 예배와 소그룹 모임 동안 영어 학교와 놀이 학교를 각각 1시간씩 운영해 부모들이 온전히 예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3040세대가 수련회도 따로 가는데, 청년 성도가 돌봄 도우미가 돼 함께한다.
선교 영역에서도 이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됐다. 아이 양육으로 멀리 갈 수 없다는 점, 헌금이 직관적으로 쓰이는 것을 선호한다는 특징은 지역 내 가까운 이웃 봉사로 실현될 예정이다. 정 목사는 “3040세대가 5월엔 어려운 어르신을 교회로 초대하는 등 섬기고 9월엔 몸이 불편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을 찾아가 함께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식사 교제하는 선교를 계획하고 있다”며 11월엔 지역 내 3040 가나안 성도를 위한 집회도 구상 중이다.
온라인서 신앙고민 소통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진 가나안 성도를 위해 온라인 신앙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교회도 있다. 2021년부터 온라인 디아스포라 사역 ‘더오다(The ODA, The Online DiAspora)’를 진행해 온 경기도 김포 이름없는교회(백성훈 목사)는 지난해부터는 가나안 성도들의 신앙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디오 형식의 신앙 토크 프로그램 ‘더오다 라이브’를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주변의 가나안 성도를 전도하고 이를 위해 공동체가 함 기도하는 ‘등잔 밑 한 영혼 챌린지’를 진행할 예정이다. 40일 동안 기도문과 은혜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전달한 후 오는 6월 ‘다시말씀집회’로 초대하는 방식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더오다 토론회’ 등 자유롭게 신앙에 대해 묻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왔다. 기존 교회의 주입식 신앙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교회 홍보물도 기존 틀에서 벗어나 담임목사 사진과 십자가 이미지를 배제하고 복음적 감성을 담아 가나안 성도들이 거부감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로도 이어졌다. 현재 이 교회 교인의 40%가 가나안 성도였다가 정착한 이들이다. 백성훈 목사는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신앙적 고민을 나눌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이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삶 속에서 동행하는 신앙
수원시 영통에 있는 소망을노래하는교회(정우준 목사)도 출석 교인의 절반 이상이 가나안 성도 출신이다. 개척 당시 목회자 가정뿐이었다가 4년 만에 80명이 출석하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절반 이상이 가나안 성도 출신으로, 기존 교회를 떠났다가 신앙 공동체를 다시 찾은 이들이다. 이 교회는 ‘주일 성수’보다 ‘신앙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교대 근무 등으로 주일 예배 참석이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교회가 직접 삶 속으로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가나안 성도들과 산책을 하거나 식사를 함께하며 신앙적 고민을 나누는 것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앙을 회복한 성도가 또 다른 가나안 성도를 교회로 이끄는 사례도 많다. 한 가나안 성도 출신 청년은 교회에서 배우자를 만나 교회 도움을 받아 예배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예배자들의 여행’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교회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신앙을 자연스럽게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2022년 일본을 시작으로 제주도 등에서 네 차례 진행된 이 여행은 가나안 성도들이 신앙의 의미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정우준 목사는 “교회 출석이 목표가 아니라 신앙 안에서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교회는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신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동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쉼과 묵상, 신앙 회복을 돕다
서울 강동구 바꾸는교회(문종성 목사)는 개척 2년 차인 미자립교회지만 “예수님 안에서 다시 회복하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환대한다”는 비전을 갖고 가나안 성도의 신앙 회복을 위한 비전트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역 봉사가 아닌 ‘쉼과 묵상’에 초점을 맞춘 비전트립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가나안 성도들을 포함한 10여 명과 함께 목포 기독교 역사지를 방문하고 신안 섬티아고를 탐방하는 국내 비전트립을 진행했다. 올해는 7월 일본 시코쿠 다카마쓰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현지 일본인 교회에서 머물며 선교사의 사역 이야기를 듣고, 낮에는 여행, 밤에는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교회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지방 성도와 가나안 성도들도 지원했다.
문종성 목사는 “교회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거나 새로운 신앙적 도전을 하기 어렵지만, 여행이라는 유연한 상황 속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의 정체성, 신앙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 속 가나안 성도 찾기
지역 사회 위기 가정·청소년을 상담하며 ‘세상 속 가나안 성도’를 발굴하고 이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 이들도 있다. 교육청과 협업해 지역 사회 위기 청소년 지원 사업을 7년째 이어오는 비영리 민간단체 미담의 김동영 대표가 그렇다. 바람길교회 목사이기도 한 김 대표는 “대화법 강의나 부모 상담 등 교육 과정 자체엔 종교색이 전혀 없지만, 쉬는 시간 등에 개인사를 나누다 복음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종종 있다”며 “이런 분들의 요청으로 지금껏 30가정을 지역 교회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설립한 미담은 현재 경기도 내 15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이 중 7개 지부는 지역 교회 목회자가 운영한다. 김 대표는 “이전에 명지대 기숙사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청년들, 특히 가나안 성도를 상담했는데 이때 힘든 청소년기를 겪은 청년일수록 방황하기 쉽다는 걸 느꼈다”며 “어린 나이에 위기를 만난 이들이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교육하고 상담하려 한다”고 말했다.
세분화된 세상, 사역도 맞춤하게
김 대표는 교회 밖에 있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한 사역을 꿈꾸는 목회자에겐 “사역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은 교회 개척도, 교회 부흥도 아닌 ‘사역 개척 시대’”라며 “다양한 형태의 사역에 도전해 세상과 소통하며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이들이 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교수도 “현대 사회가 점점 더 세분화되고 개인화되는 흐름 속에서, 교회 역시 획일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맞춤형 사역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인들의 연령과 신앙 유형, 관심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역이 필요하다”며 “통성기도회만이 아니라 묵상 중심의 기도회도 제공하고, 대중 집회뿐만 아니라 소그룹 성경 공부나 동호회 활동같이 다채로운 신앙공동체를 제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수연 신은정 양민경 박효진 조승현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