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장악 의지를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트럼프표’ 가자 지구의 미래를 그린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동상, 트럼프 리조트 등이 들어선 가자 지구에서 그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선베드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 등이 담기자 부정적 반응이 잇따랐다.
지난 26일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인스타그램, 트루스 소셜 계정에 올라온 짧은 동영상에는 ‘트럼프 가자’라고 불리는 미래 가자 지구의 모습이 담겼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영상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가자 지구와 아이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이후 ‘2025 가자, 그다음은 무엇인가?’라는 문구와 함께 아름다운 관광지로 탈바꿈한 가자 지구로 화면이 전환된다.
해안선을 따라 고층 빌딩과 리조트가 자리 잡은 가자 지구, 해변을 거닐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폐허나 다름없던 거리는 복구되고,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며 활기를 되찾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후무스(중동 지역 음식)를 먹으며 웃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영상은 후반부로 갈수록 기괴하고 황당한 장면들로 바뀐다. 어린아이가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 형상을 한 풍선을 들고 있거나 머스크 CEO가 허공에 돈다발을 뿌리면 아이들이 이를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는 기괴할 만큼 커다란 트럼프 대통령의 동상이 황금빛을 발하며 서 있다.
심지어 상의를 벗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지구와 전쟁을 벌여온 네타냐후 총리와 나란히 ‘트럼프 가자’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즐기는 모습도 묘사됐다.
동영상에 흘러나오는 랩 가사의 내용도 충격적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신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왔다”(Donald Trump’s coming to set you free), “밝게 빛나는 ‘트럼프 가자’”(Trump Gaza shining bright), “황금빛 미래, 새로운 빛”(Golden future a brand-new light) 등의 랩이 이어졌다. “‘트럼프 가자’ 넘버원”(Trump Gaza Number one)을 연신 외치기도 했다.
게시물에는 비판 댓글이 쇄도했다. 미국인들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계정이) 해킹당했다고 말해 달라” “나는 트럼프를 좋아하지만 이 쓰레기는 무엇인가” “이걸 올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 SNS 관리자가 누구인가. 그가 스스로 이런 걸 올렸을 리가 없다” “충격적이다” “당신을 세 번이나 뽑았지만 이건 아니다” “이 영상을 보고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비인간성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자지구 하마스가 운영하는 정부 미디어 사무소는 성명에서 이 동영상을 “수치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집행위원회 위원인 와셀 아부 유세프는 CNN과 인터뷰에서 “(이 영상은) 광대 속임수일 뿐이다. 리조트나 중동 리비에라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며 “이곳은 우리 조상과 부모님의 땅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 지구를 장악할 것(take over)”이라며 200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인근 국가로 이주시키고 이 지역을 미국 소유의 ‘리비에라’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 제안을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리비에라’ 구상은 상당수의 미국인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중순 CNN이 유선·온라인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구상은 트럼프가 발표한 정책 중 가장 선호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에 참여한 미국인 중 13%만이 ‘좋은 일’이라고 답했으며 58%는 ‘나쁜 일’이라고 답했다.
아랍 지도자들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처음으로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지구 계획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들은 다음 달 4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만나 이 계획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