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선전에 가려진 한국 수출 경쟁력 약화가 올해 수출 전선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6개월 이상 수출이 감소한 주력 산업 품목만도 전체 15개 품목 중 8개에 달한다. 이 중 4개 품목은 일단 트럼프발 관세 직격타는 피했는데도 올해 업황이 암울하다. 구조적 수출 감소세인 품목들에 대한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6개월 이상 수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주력 품목이 전체의 과반을 차지했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철강, 일반기계, 석유제품, 섬유, 가전, 이차전지 품목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 중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철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 위기 앞에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철강에 관세 25%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고 조만간 자동차에도 관세를 매길 계획이다. 지난해는 글로벌 수요 부진 영향을 받았는데, 올해는 특수 상황까지 겹치며 전망이 더 암울해진 것이다. 이차전지 역시 전기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지난해 부진이 올해까지 이어질 공산이 높다.
나머지 4개 품목의 경우는 ‘트럼프 효과’와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우울한 전망만 나온다. 지난해 성적표를 보면 일반기계는 지난해 3~12월 중 7월(17.7%)을 제외하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석유제품도 2월(-3.7%) 이후 나아지는 듯하더니 8~12월에 5개월 연속 내리막 흐름을 그리며 전년 대비 -3.3%를 기록했다. 섬유와 가전 역시 등락을 반복하며 연간 기록은 각각 -4.0%, 0.4%로 마무리했다. 모든 품목 모두 하반기로 갈수록 안 좋은 흐름을 보였다는 점에서 올해 성적도 부진할 거라는 예상이 제기된다. 해당 품목들의 지난달 수출액은 1년 전 대비 -15.5~-29.8%를 기록했다.
4개 품목 부진의 공통된 원인으로는 글로벌 수요 부진과 함께 ‘중국’ 시장이 거론된다. 무역협회 보고서는 일반기계나 석유제품, 섬유 수출 부진 원인으로 대중국 수출 감소를 꼽았다. 가전 역시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과 첨예한 경쟁을 하며 점유율 하락 우려가 크다. 공급 과잉에 시달린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여기에는 중국에 우위를 빼앗긴 이차전지도 포함된다.
이는 공급 과잉 품목 구조조정 필요성에 힘을 싣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이에 대한 정부의 답은 ‘자율’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제품 경쟁력 강화에 3조원 규모 정책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지난달에는 이차전지 대책으로 업계에 8조원 규모 정책금융 공급책을 내놨다. 섬유의 경우 산업부 차원에서 친환경 섬유 개발 지원 등 간접 지원을 시행 중이다. 일반기계는 경기 흐름을 타는 만큼 품목별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유하자면 비대해진 몸을 다이어트로 건강하게 바꾸는 일”이라며 “그 의사결정을 앞당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율에 맡기다보니 기업들이 선뜻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근본 원인을 제공한 중국 의존도나 중국 기업과의 경쟁 문제와 관련한 종합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