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 개봉(예정)작에서 주인공보다 화제가 되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다양한 모습의 권력자들이다. 요즘 국내외 정치 질서가 급변하는 가운데 관객들은 영화의 캐릭터에 실제 정치인을 대입하고 비교하며 현실 상황을 비판하거나 현실과 다른 영화 속 상황을 동경한다.
권력자들은 영화에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과 맞서거나 힘 없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 지난 12일 개봉한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는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된 샘 윌슨(앤서니 매키)과 싸우는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 대통령이 등장한다.
로스 대통령은 희소자원 아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는 어벤저스 원년 멤버 헐크(마크 러팔로)의 피에서 나온 감마선에 감염된 새뮤얼 스턴스와 과거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턴스를 배신한 대가로 알약으로 위장된 감마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혈중 감마선 수치가 계속 높아지던 로스 대통령은 분노하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레드 헐크로 변신한다. 그는 백악관을 부수고 캡틴 아메리카를 공격하며 난폭성을 드러낸다. 자신의 본능과 싸우던 로스는 관계가 소원해진 딸을 떠올리며 폭주를 멈춘다.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로스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다.
28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에선 니플하임 행성의 독재자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이 관객들의 분노를 이끌어낸다. 마샬은 선거에 실패한 정치인으로 극단 종교 세력을 등에 업고 행성 개척단의 리더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인종주의, 성차별, 우생학, 자본주의 등 모든 비윤리적·비인간적 요소를 가지고 폭정을 일삼는다.
마샬은 역사 속 여러 독재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주변 인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면서도 아내 일파(토니 콜렛)의 말에는 아이처럼 따르는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며 블랙코미디를 선보인다. 마샬은 “니플하임을 순수한 백색 행성으로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여성 구성원이 죽으면 인간적인 애도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을 기회를 놓쳤다”며 분노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마샬의 모티브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봉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마다 떠올리는 사람들이 달랐다”며 “한 이탈리아 기자는 ‘무솔리니를 모델로 한 것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지난달 개봉한 ‘시빌 워: 분노의 시대’에는 흡사 현실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미국의 3선 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정부군의 공습을 승인하고 미 연방수사국(FBI)을 해산한다. 대통령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헌법을 무시하고, 정치가 사라진 국가에서 무질서와 극단적인 대립만이 존재한다.
관객들에게 영화와 실제가 겹쳐보이는 상황은 작품 속 인물에 대한 관심과 분석을 키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보이는 지금의 현실은 씁쓸함을 안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지도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기 마련인데 예전에 비해 지도자들이 ‘악당’이 돼가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파시즘이 두드러지면서 권력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부각되고, 그것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면서 “‘지금과 같은 정치 과몰입 현상이 긍정적인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관객들로 하여금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에선 영화가 순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