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내에서 2023년 이스라엘에 감행한 기습 공격에 대한 반성이 나왔다. 팔레스타인인 수만명이 사망하고 영토가 폐허로 전락하는 결과를 알았다면 이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란 취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하마스에 대한 불만이 조직 지도부 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 대외 관계 책임자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와 21일(현지시간) 진행한 인터뷰를 24일 보도했다. 마르주크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공격 계획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서 “만약 (가자지구에 파괴적인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면 2023년 10월 7일 공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해 가자지구 전쟁을 촉발했다. 당시 이스라엘에선 1200여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인질로 잡혔다. 하마스는 승리를 자축했지만 곧바로 이스라엘에 의한 대대적 보복에 직면했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 공격에 팔레스타인인 수만명이 사망했고 수백만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가자지구는 완전히 황폐화된 상태다.
마르주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가한 피해 규모를 고려했을 때 하마스의 승리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어떤 경우에도 그건 승리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다만 하마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를 ‘일종의 승리’로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훈련되지 않은 초보자가 헤비급 복싱 챔피언인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에서 살아남았다면 사람들은 그가 승리했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마르주크는 하마스 내에서 금기로 통하는 무장 해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 말할 준비가 돼 있다”며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군사력을 해체하지 않고는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마르주크의 발언은 이달 중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회의에서 다른 하마스 내 고위 간부인 오사마 함단 대변인이 “저항의 무기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힌 것과는 배치된다. 마르주크는 해당 발언에 대해서도 “어떤 지도자도 스스로 의제를 정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무장 해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타협 범위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수년간 살았던 마르주크는 하마스 내 대표적 실용주의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87년 하마스 창립 때부터 참가했으며 정치국장 등 요직을 지냈다. 마르주크의 친구인 스탠리 코헨은 마르주크에 대해서 “그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라며 “그는 국민에게 전례 없는 보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어떤 행동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는 보도 이후 성명을 통해 “NYT가 마르주크의 발언을 인용한 것은 잘못된 것이며 맥락을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과거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의 저항권 행사와 정착지 건설 등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며 “마르주크도 우리 땅이 점령당한 상황에서 저항의 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그룹의 입장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NYT는 “마르주크의 견해가 다른 하마스 지도자들과 어느 정도 공유되는지, 아니면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인지, 단체 내 동료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인지는 불분명하다”며 “마르주크의 발언은 하마스 관리들 사이에 10월 7일 공격에 대한 당 노선과 결과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