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민선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 정부가 가장 뼈아프게 느껴야 할 것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관세)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3.00%에서 2.75%로 0.25%포인트(p) 인하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1.9%에서 1.5%로 낮춰잡았다. 지난달 예상했던 1.6∼1.7%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 총재는 "소비와 건설 등 지표가 좋지 않게 나왔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관세정책의 윤곽이 일부 드러난 점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관세정책 등 여파로 올해 경제 성장률이 1.5%마저 밑돌 경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공조해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새 산업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새 산업을 도입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다 피하다 보니 새 산업이 하나도 도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내년 성장률을 1.8%로 전망하면서 "그게 우리의 실력"이라고도 했다.
수년간 구조조정 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육성하지 않은 탓에 주요 수출 업종의 경쟁력은 떨어졌고, 노동력도 고령화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총재는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에 관해 15조∼20조원이 적정하다는 지난달 견해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는 추경을 '진통제'에 비유하며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정 건전성과 재정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과도한 추경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기준금리 전망은
▲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여섯 분 중 네 분은 3개월 내 현 2.75% 기준금리를 유지할 가능성 크다는 견해, 두 분은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셨다. 네 분은 대내외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인하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는 데 대한 우려를 들었다. 그래서 당분간 금리 수준을 유지한 채 여건 변화를 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었다. 두 분은 경기 하방 압력을 고려할 때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건 변화를 보면서 판단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금리 인하 여력에 대한 우려에 따라 추가 인하 시기에 대해 의견이 달랐지만, 여섯 분 모두 통화정책이 금리 인하 국면에 있고, 향후 데이터를 보면서 인하 시점을 결정해 나가자는 데는 공감했다.
--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면 한은의 금리 인하 여력이 1∼2회 정도로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올해 금리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에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다수 의견은 올해 2월 금리 인하를 포함해 2∼3회 인하 정도로 보시는 것 같다. 한은도 내재적으로 금리 정책을 가정하고 성장률 등을 전망하는데, 연간 2∼3회라는 시장 전망은 저희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현재 기준금리 수준이 중립 금리 범위 안에 있나. 추가 인하 필요성 목소리가 있는데 총재 생각은.
▲ 중립 금리 모형마다 다르지만 2.75%면 중립 금리 상단이나 그보다 좀 더 위쪽이라고 본다. 얼마나 빨리 인하할지는 데이터를 보고 결정할 것이다. 억울한 것은, 한은이 금리 인하를 하지 않아서 실기라는 지적이 있는데 지금은 금리 인하기다. 지난해 8월에는 가계부채 때문에, 올 1월에는 환율 때문에 한 달 늦춘 것이고, 인하 기조를 유지하면서 잘 조정해 나가고 있다. 좀 맡겨주시고, 자꾸 실기라고 하지 마시고, 더 잘할 수 있으면 그다음에 한국은행 총재가 되신 다음에 하시면 좋을 것 같다.
--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경제 성장은 재정으로 뒷받침하고 금리는 환율과 금융안정 상황 등을 고려해서 현 수준에서 충분히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총재 생각은.
▲ 현 수준에서 금리 인하를 멈춰야 한다는 견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지금 금리 인하기에 있기 때문에 몇차례 낮출 필요가 있다는 데는 많은 공감대가 있다. 현재 1.5% 성장률 예측한 데도 그런 예상이 반영돼있다. 다만 그 시점이 빨리빨리 내릴지, 상황을 보면서 조절할 지인데, 저희는 당연히 경기 말고도 그 외 요소를 보면서 시점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1.5% 성장에 금리 하락은 반영돼있고, 1.5% 이상의 성장률이 필요하다면 재정정책과의 공조가 당연히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재정정책이 없다고 해서 금리를 저희 예상보다 더 낮추면 환율, 물가, 가계부채 등에 영향을 줘 우리가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온 금융안정 기조가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 1.5% 정도로 예상하지만, 그보다 더 낮아질 경우 재정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금리 정책으로만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하향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미국 관세정책이 금리 등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 계엄으로 인한 여러 소비심리 위축 등을 고려해 중간발표를 한 적이 있고, 그 이후에도 데이터를 보는데, 심리 위축만큼이나 소비와 건설 등이 좋지 않게 나오고 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전이라 관세 정책을 가정한 정보가 없었는데, 지난 한 달 관세 정책의 모양이 많이 드러나서 1월에 예상한 1.6∼1.7%보다 낮춘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불확실한 점이 많아서, 가정해서 성장률에 반영해놓고 있다. 성장률에 따라 금리와 물가도 변화해갈 것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 트럼프 관세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1.5%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하는 기관들도 있다.
▲ 1.5% 성장을 가정할 때,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들을 반영했다. 이미 발표된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는 집어넣었다.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는 올해 하반기부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당겨졌기 때문에 1분기부터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 밖에 주요 교역국 관세는 내년부터 영향 미칠 것으로 봤는데(이제는) 올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의약품 관세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시행 시기도 불확실해 확률적으로 일부 반영했다. 1.5% 성장률은 상당히 중립적인 전망이라고 본다. 관세 정책과 추경 등 불확실성이 크고 상하방 요인이 다 있기 때문이다.
미국 관세정책으로 인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1.5%보다 확 떨어지면, 금리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공조해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수출 중심 경제라지만 지난 10년 우리 경제를 연구해보면 우리 성장률에서 순 수출이 기여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낮다. 우리 수출 경쟁력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과거처럼 수출로만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새로운 산업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우리 정부가 가장 뼈아프게 느껴야 할 것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 산업을 도입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다 피하다 보니 새 산업이 하나도 도입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관세)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8%다. 내년 내후년 성장률 방어 전략은.
▲ 우리는 과거 고도성장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1.8%면 위기라고 하는데, 전 내년 성장률 1.8%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 실력이다. 우리는 그동안 구조조정 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키우지 않고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왔다. 중국 등과의 경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해외 노동자도 데려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1.8% 이상 성장하려면 할 수 있는 게 재정 동원하고 금리 낮추는 것인데, 이러면 가계부채 늘고 재정도 문제가 생긴다. 1.8%보다 높은 성장을 하려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면 경제 성장률이 0.07%p 오른다는 분석에는 변함이 없나. 1월 의사록에 인하 효과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 계량적 분석에 따른 답이다. 지난해 하반기 두 차례 인하를 고려하면 올해는 0.15%p정도 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미 모델에 반영했다.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은 금리 인하 상황에서 성장에 영향을 주는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지난해 12월∼올 1월 지출이 일어나지 않는 측면도 있었다.
-- 지난달 15조∼20조원의 추경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대규모 추경이 실행될 경우 금리 인하 경로나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나.
▲ 15조∼20조원 추경은 성장률을 0.2%p 정도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올해 성장률이 1.5%에서 1.7%가 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그 이상 규모로 하는 건 부작용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추경은 단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질 때 보완하는 역할이다. 진통제를 가지고 훨훨 날게, 뛰게 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추경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이고, 재정 건전성 등을 고려하면 항구적으로 남아있지 않도록 쓰는 게 중요하다. 재정은 올해 늘어나면, 내년엔 올해보다 더 늘어나지 않으면 성장에 마이너스 효과로 작동한다. 근본적으로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 KDI가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는데.
▲ KDI와 통화정책 관련해선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KDI도 두세 번 금리 내려야 한다고 하고, 저희도 예상치에 반영하고 있다. 다만 당장 낮춰야 한다고 하면, 저희는 경기 외 다른 변수들도 보면서 정하기 때문에, 그 시기는 우리가 정하는 거라고 말씀드리겠다. KDI에서 추경이 필요 없다고 한 부분은 의아했다.
--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낮춘 이후로 계산해보면 대출금리가 안 떨어졌다고 하는데, 사실 5월 이후 미국과 우리 금리 인하 전망을 선반영해 시장금리가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 효과는 진행 중이라고 판단한다. 부동산 규제 등으로 인해 신규대출은 금리가 오른 측면은 있다. 이는 며칠 전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말한 대로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신규대출 가산금리도 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증가 폭이 확대될 가능성은.
▲ 서울지역 부동산 거래 허가제가 완화된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지만, 다른 부분까지 번지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한다. 부동산 가격을 직접 본다기보다 가계부채가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관심이 있는 건데, 아직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 같아 지켜봐야 한다. 규제 완화로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통화정책으로 어쩔 수는 없다.
-- 부동산 PF 구조조정에 대한 생각은.
▲ 과거 우리는 새 산업을 개발하기보다 부동산 투자가 안전하다고 하면서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많은 자금이 부동산에 몰렸고, 현재 조정하는 단계다. 부동산에 집중투자 된 것이 연착륙되도록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이다. 최근 파산 신청한 중견 기업들도 구조조정 계획안에서 관리되고 있다. 추경의 일부를 부동산PF 구조조정에 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원/달러 환율이 지난달 1,460∼1,470원대에서 1,420∼1,430원대로 내렸다. 이는 감내할 만한 수준인가.
▲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1월에도 국내 정치적 요인과 달러 강세가 맞물리면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동결) 결정을 한 것이다. 현재는 변동성이 상당히 줄었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내부에서 판단하고 있다.
-- 1월 초 1,470원 중 30원 정도가 계엄 사태 등 정치 불확실성의 영향이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 당시에는 많은 변수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엄이라는 사건이 생겼기 때문에 계량적 분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 정책 불확실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책 방향,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 추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확실하게 답하기 어렵다.
-- 높은 환율 수준이 물가 상승률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은.
▲ 높은 환율은 물가 상승률에도 영향을 주지만,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 1.9%를 예상했다. 생필품의 물가 수준에 걱정이 많은데, 통화정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가 계속 희생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생산자 보호와 소비자 보호를 균형 있게 접근해서 물가 수준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ssun@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