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돌보고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모습이 반대자들 눈에 비친 초대교회의 브랜드였다.”
박해와 역병 속에서도 목숨 걸고 이웃을 돌본 초대교회의 ‘사랑과 환대’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재근 광신대 교수는 25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교회(이기용 목사)에서 열린 국민일보 목회자포럼 기조강연에서 “기독교가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섬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세상 속에서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타협하지 않았던 초대교회의 행보를 ‘제3의 길’로 분류했다. 그는 “당시 신자들은 로마 사회의 법과 문화를 따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실천했다”며 초대교회의 특징으로 ‘환대’를 꼽았다. 이 교수는 2세기 기독교 문서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을 초대교회의 환대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박해받는다. 가난하지만 많은 이를 부요하게 하고 비방을 받지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
초대교회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두 가지 길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제1의 길’은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는 길이다. 당시 로마 제국의 주류 문화에 동화된 사람들은 성공과 인기, 권력에 집착하며 세상과 타협했다. 신앙보다 세속적 이익을 우선하며 기존 질서에 흡수됐다. ‘제2의 길’은 세상을 거부하고 철저히 배타적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이 교수는 “제2의 길을 택한 유대인들은 세속의 부패와 타락을 경계했지만 결과적으로 세상에 대한 책임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제3의 길은 다르다. 대안적인 길이다. 초대교회는 로마 사회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며 세상과 단절하지 않고 사랑과 환대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 교수는 “이 ‘환대의 정신’이 기독교의 역사적 성장을 가능케 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의 연구 ‘기독교의 발흥’(1996)을 인용한 그는 “2~3세기 대규모 전염병 창궐 시 병든 자들을 돌본 기독교인들의 브랜드가 빠른 기독교 확산의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기독교를 거부해 훗날 ‘배교자’로 불렸던 황제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Flavius Claudius Iulianus, 331~363)의 기록도 소개했다. 이 교수는 “율리아누스는 나그네를 너그럽게 대하고 죽은 자의 무덤을 관리하며 가난한 동료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신자가 아닌 가난한 자들까지도 구제하는 기독교인의 행동을 언급했다”며 “자기 로마종교 신자들이 기독교인처럼 사랑하며 살지 못하는 점을 애통해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언급하며 “각 진영이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대립하는 가운데 기독교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일각에서는 광장을 점령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신앙을 말한다”며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두 가지 길을 거부하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처럼 극단적 대립과 불신이 만연한 시대일수록 교회는 말씀(Word)을 붙들고 동시에 세상(World)을 깊이 이해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사회와 동떨어진 게토(Ghetto,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거리나 구역)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되 세상의 종이 되지는 않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