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5일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내수 회복 지연과 수출 증가세 둔화로 경기 부양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통화 완화는 경기 하방 요인이 산재한 가운데 재정 정책마저 여야 정쟁에 발이 묶인 상황이어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게 한은 입장이다.
◇ 1%대 중반 성장 가시화
한국 경제의 저성장 전망은 상수가 돼 가고 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5%로 낮췄다. 자체 추산한 잠재 수준(2.0%)을 상당폭 밑돌 것이란 분석이다.
한은이 연간 전망치를 0.4%포인트(p) 이상 조정한 것은 지난 2022년 11월 당시 이듬해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p 낮춘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 상황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다.
각 기관은 올해 성장 전망을 줄하향해왔다.
연초 기획재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8%로 낮춘 데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11일 2.0%를 1.6%로 조정했다.
지난달 말 기준 해외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도 1.6%로 한 달 전보다 0.1%p 하락했다. 이 중 JP모건은 가장 낮은 1.2%를 예상했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1.8→1.5%), 씨티(1.5→1.4%) 등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을 고려하면 이달 말 기준 평균치는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영국 민간 연구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1.0%를 제시하기도 했다.
◇ 내수 침체·수출 둔화에 대내외 불확실성 가중
당장 금리 인하로 경기를 떠받쳐야 할 만큼 내수 경기가 침체해 있다는 게 한은 판단이다.
지난해 1~11월 소매 판매는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내리 감소세를 지속했다.
비상계엄 사태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3월 이후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올해 1~2월 반등했지만, 여전히 계엄 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산업 기업심리지수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연속 하락해 팬데믹 때인 2020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르렀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수출도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해 1월 수출은 이른 설 연휴 영향으로 16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2월 1~20일 일평균 수출도 1년 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예고대로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산업 관세를 일제히 인상할 경우 국내 수출 기업들에 상당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 통상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반도체 전반의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자동차 수출도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환율 변동성 완화…인플레 둔화 기대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계엄 사태 직후와 비교하면 변동성이 비교적 낮아진 상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특정 환율 수준을 목표로 하지 않고, 변동성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시장에서는 미국과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환율이 뛸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한미 간 성장률 역전이 더 문제라는 시각도 교차한다.
최근 고환율,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상승한 물가 역시 금리 결정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한 분위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낮은 수요 압력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둔화해 목표 수준(2%) 근방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게 그간 한은의 전망이었다.
이번 금리 인하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리를 동결하면서 이례적으로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 이달 인하 가능성의 힌트를 남겼다.
당시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전원이 향후 3개월 이내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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