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 한국 사실주의 연극 대표작 된 10만원 현상 희곡 당선작

입력 2025-02-25 04:30
국립극단이 2023년

국립극단은 지난 2020년 창단 70주년 기념작으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흐름을 잇는 천승세 작가의 ‘만선’을 선택했다. 당시 자문회의가 국립극단이 그동안 선보였던 작품들 가운데 동시대성을 가진 근현대 희곡으로 ‘만선’을 첫손에 꼽았기 때문이다. 특히 ‘만선’은 국립극단이 1964년 10만원의 상금을 내건 희곡 현상공모에서 뽑은 작품이기도 하다.

‘만선’은 작은 섬마을에서 평생 배 타는 일밖에 몰랐던 곰치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부의 비극적인 숙명과 함께 1960년대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서민들의 무력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현상공모에 당선된 그해 7월 최현민 연출로 선보인 ‘만선’은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작가의 작품임에도 가난한 어촌과 화전민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과 전라도 사투리로 연극이 공연된다는 점에 흥미를 자아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천승세 작가는 이듬해 제1회 한국연극영화상(현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만선’은 지금까지도 국립극단의 공모작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2020년 ‘만선’의 연출을 맡은 심재찬 연출가는 극 중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현대 관객에게는 다소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천승세 작가의 허락을 얻어 윤미현 작가가 윤색한 희곡은 순종적이었던 극 중 여성 캐릭터들을 보다 당차게 설정했다.

국립극단이 2023년 선보인 ‘만선’. 2021, 2023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공연이다. 국립극단

이런 제작 과정을 거친 ‘만선’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20년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이듬해 정식 공연이 이뤄졌다. 그리고 2023년 재연에 이어 올해 국립극단의 첫 제작 작품으로 3월 6~30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극작 이후 60여 년이 지났어도 경제적 착취 구조와 빈부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신구 세대 간 갈등까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진한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2023년 공연에 참여했던 창작진과 배우들 전원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일 예정이다.

심재찬 연출가는 “지난 공연에서 앙상블, 팀워크가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기분이 좋았다. 배우와 스태프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잘한다는 게 가장 큰 칭찬이더라. 이번에 다시 모인 게 그 에너지와 시너지를 한 번 더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라면사 “이번 공연에선 눈에 띄게 구조나 형식에 변화를 주기보다 캐릭터마다 디테일들을 추가하는 방향을 계획 중이다. 특히 자신의 삶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