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국립예술단체 통합과 지역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국 공연예술 분야의 중요한 축을 흔드는 만큼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문체부가 공론화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서다.
문체부는 예술·체육·관광 분야 향후 10년 정책 수립을 위한 ‘문화비전 2035’에서 국립예술단체 운영에 대한 큰 폭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극단·무용단·연희단·오케스트라 등 4개 장르의 국립 청년예술단체가 내년에 지역에 신설되며, 서울예술단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상주단체로의 이전을 추진한다. 주요 국립예술단체의 분원도 순차적으로 지역에 설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단체의 통합 사무처를 5월까지 신설해 효율성을 높일 예정이다. 이외에 국립극단 내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3월 중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으로 분리하며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국립현대미술관 등은 장기적으로 재단법인으로 독립시킨다.
3월에 발표 예정인 ‘문화비전 2035’의 방향성은 지역소멸 위기와 청년 일자리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문화적 해결책 마련이다. 방향성만 보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문체부가 내놓은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공청회 한 번 없이 5개 국립예술단체의 행정과 경영을 합치는 통합 사무처 설립에 대한 논란이 크다. 앞으로 통합 사무처를 통한 문체부의 간섭과 지시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현재 5개 국립예술단체는 각각 별도의 법인과 이사회, 사무국, 후원회 조직을 두고, 문체부 국장 등 관료들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덧붙여 사무국 국장은 공모의 형태지만 문체부 출신 공무원들이 독식하고 있다. 문체부는 국립예술단체들의 자율성은 그대로 보장하면서 통합 사무처를 통해 행정업무 일원화와 경영의 효율성 강화를 꾀하겠다는 입장이다. 통합사무처엔 기획조정국(12명), 운영지원국(12명), 재무관리국(11명), 홍보협력국(7명) 등 4개국을 두는 방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 출신 공무원이 주도하는 이사회는 최근 단체별로 정관을 개정해 통합을 대비하고 있다.
단체별로 진행하던 예산·회계·홍보 등의 업무를 총괄 수행함으로써 낭비를 막고 전문성을 살린다는 문체부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국립예술단체들을 비롯해 공연계 전반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단원제 유무 등 각 단체의 장르적 특성과 예산 및 운영 방식의 차이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일괄적 통합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처럼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오페라합창단, 발레단, 오케스트라가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시스템이라면 몰라도 극장도 없이 사무국만 통합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시스템이다. 게다가 문체부가 앞서 경영 효율을 명분으로 명동예술극장과 정동극장을 통합했다가 분리하는가 하면 다시 명동예술극장과 국립극단을 통합한 사례들을 보면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5개 국립예술단체는 극장 전속이 아니기 때문에 늘 대관에 어려움을 겪는 한편 국제 교류 같은 장기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통합 사무처와 예술의전당이 협약을 맺어 대관을 수월하게 만들겠다는 문체부의 약속은 구속력이 없다는 게 국립예술단체들의 반응이다. 앞서 문체부의 지시로 예술의전당이 국립예술단체에 우선 대관을 해줬지만, 국민권익위원회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 민간 예술단체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립예술단체들은 현재 민간 예술단체들과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여러 공연장의 대관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은 문체부가 국립예술단체들을 비롯한 예술계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국립예술단체들이 통합의 기본 전제로 생각하는 극장 문제에 대해 예술의전당은 물론 음악계가 바라지 않는다는 문체부의 설명이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또한 지역에서도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분원 신설에 대해 무조건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하고 청년 예술가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전국에 자칫 도·시립예술단체의 역할이 위축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도·시립예술단체들 중에는 지역의 민간예술단체처럼 공연과 유통을 문체부가 지원해달라는 의견도 나온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