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숨결이 노트에 닿았다. 완금씨 코끝과 노트 사이, 볼펜 한 자루도 눕히기 힘든 거리였다. 실눈을 뜨고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쓸 때마다 그의 왼쪽 팔자주름도 덩달아 깊어졌다. 왼쪽 어금니로 볼펜을 쥔 박완금(66)씨는 2분 만에 두 문장을 완성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22일 서울 동대문구 진흥장학재단에서 만난 완금씨는 마태복음 10장 8절,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을 입으로 써냈다. “어려운 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낼 때마다 곱씹는 말씀”이라며.
충남 서산에 사는 완금씨는 이날 처음 진흥장학재단에 왔다. 2010년, 재단에 첫 후원금을 보낸지 15년 만이다. 첫해에 7만원, 그 뒤론 매달 10만원씩 후원한 완금씨는 이날 장학생들 앞에서 감사장을 받았다.
형편이 넉넉해서 후원하는 건 아니다. 남편은 2022년 환경미화원을 은퇴했고, 지금은 동네에서 파지를 줍는다. 읍사무소 소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달도 있다. 남의 자식 학비를 대지만, 정작 자기 자식 학원 한 번 보낸 적 없는 삶이 부부의 인생이었다. 남편 김동덕(66)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날은 후원하느라 쌀을 못 샀지. 짐승 주던 상한 쌀, 그걸 먹은 날도 있었어.”
더군다나 완금씨는 장애인이다. 1993년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량과 교통사고가 나면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와 휠체어 위에 살아간 세월만 33년. 어느덧 인생 절반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부부는 나눔의 기쁨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부는 진흥장학재단뿐만 아니라 굿네이버스 유엔난민기구 월드비전 등 NGO를 비롯해 미혼모지원센터에도 후원하고 있다. 완금씨는 “도움을 받아본 사람으로서 어려운 이웃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전후 방송사들이 완금씨 부부의 사연을 다큐멘터리로 다루면서 부부는 당시 시청자들의 단기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완금씨는 “이웃과 나눔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성경 말씀 덕분”이라며 “말씀을 가까이할 땐 마치 하나님께서 나와 더 가까이 계신 것 같다. 말씀을 읽고 쓰다 보면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매일 4시간씩 볼펜을 입에 물고 성경을 필사한 완금씨는 8년 만에 성경 전체를 스프링 노트 8권에 옮겼다. 요즘엔 찬송가를 필사하고 있다. 지금껏 쓴 공책만 웬만한 성경 4권을 포갠 높이다.
“열심히 바깥에서 돈 벌어왔는데 집에서 성경 보던 아내가 후원하자고 하면 조금 망설여지지. 근데 또 어차피 천국에 아무것도 못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아깝지는 않어. 오히려 후원할 때 기뻐하는 아내 모습 보면 일할 맛이나.”
남편 동덕씨 말에 완금씨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비록 작아 보여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두 가지 발견했는데 필사와 후원”이라며 “거창하지 않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시간이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