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고진영 “세계 1위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게 골프하고 싶다”

입력 2025-02-23 14:53 수정 2025-02-23 15:03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 최장 기록(162주) 보유자인 고진영(29·솔레어)이 올 시즌 초반 확 달라진 분위기다.

23일 태국 파타야 시암 올도 코스(파72)에서 막을 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총상금 170만 달러)에서는 공동 44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앞서 출전한 2개 대회에서는 2위, 공동 4위에 입상하며 전성기 때 경기력을 과시했다.

대회를 마친 뒤 고진영은 “1라운드에서는 그런대로 경기력이 올라왔는데 라운드를 거듭할 수록 기온이 올라가면서 좀 힘들었던 것 같다”라며 “시즌 초반이니까 일희일비 하지 않고 다음 싱가포르 대회에 준비를 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LPGA투어 통산 15승을 거두고 있는 2023년 5월에 열린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 이후 2년여간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무릎과 손목 등 부상으로 고생했던 작년에도 비록 우승은 없었지만 7차례나 톱10에 입상하면서 CME포인트 랭킹 12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는 “작년 한해 사실 나쁘지는 않았다. 그 전에 워낙 성적이 좋아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며 “골프를 너무 많이 하는 게 외려 골프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는 것도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고진영은 올 동계 훈련 기간에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가급적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트레이너만 대동하고 스윙 코치없이 개인 훈련을 했다.

그는 “훈련은 예년과 똑 같았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라며 “트레이너와 매일 운동을 하면서 몸은 많이 좋아졌다. 부상 부위도 현재는 괜찮다. 하지만 매년 시즌 막바지에 부상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해 더 잘 관리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순항중이다”고 웃어 보였다.

고진영은 시즌 개막전 힐튼 그랜드 바케이션스 오브 토너먼트 챔피언스와 파운더스컵 성적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그 2개 대회는 훈련중에 출전한 것이어서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성적도 성적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라는 가이드 라인을 잡은 것이 무엇 보다도 기쁘다. 게다가 부모님께서 좋아하셔서 대만족이다”고 했다.

그는 올 시즌을 목표를 ‘부상 없는 시즌’으로 정했다. 그만큼 부상 트라우마가 심했다는 얘기다. 고진영은 “아프면 여러가지로 제한적인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시즌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다”면서 “물론 다른 선수들처럼 우승도 하고 싶다. 다만 일등이 아니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냥 하루 하루 즐겁게 열심히 치려고 한다. 그렇게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고진영은 은퇴에 대한 심경을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당장 골프를 그만 두더라도 누가 나더러 ‘더해라, 더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KLPGA투어까지 12~3년간 투어 활동을 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고 치열하게 했다. 사실 지금 그만두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골프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다. 골프가 안되면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더 좋아지면 기분도 덩달아 업된다. 오히려 우승을 많이 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세계랭킹 1위 재등극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그는 “나는 내가 세운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골프를 한다. 내 인생을 좀더 주도적으로 살고 싶다”라며 “그런 점에서 세계랭킹 1위도 중요하지만 골프를 좀 더 재미있게 치고 싶다. 그리고 그걸 더 보고 싶어하는 팬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고진영은 이어 “우승 했을 때는 바빠서 팬들을 못 챙겼다면 우승이 없으면서 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오히려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좋다”면서 “세계랭킹 1위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거를 계속 쫓고 싶지는 않다. 그랬을 때 힘들었던 것을 아니까 이제는 좀더 행복하게 골프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는 올 시즌 한국 군단의 성적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을까. 고진영은 “잘했으면 좋겠고 실제로 잘할 것 같다”고 내다 본 뒤 “LPGA투어 코스 전장이 많이 길어졌다. 거리를 늘려야 한다. 체격만 보더라도 외국 선수들을 따라 가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선수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소 버거운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 대표적 선수다. 국내에 있을 때는 매일 새벽 5시에 기상, 요가를 할 정도다. 대회 때는 요가는 유튜브로 가끔 하지만 명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그보다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란다.

고진영이 요가와 명상에 푹 빠져 있다는 건 그가 최근에 감명 깊게 있었다는 책으로도 가늠된다. 요가 지도 전문가인 앤 스완슨(미국)이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짧은 명상 수련법을 소개한 ‘일상으로서의 명상’과 독일 심리학자 듀오인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51가지 심리학을 정리한 ‘마음의 법칙’을 읽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고진영은 혼다 LPGA 타일랜드를 마친 뒤 아시안 스윙 두 번째 대회가 열리는 ‘약속의 땅’ 싱가포르로 향한다. 2022년과 2023년에 두 차례나 우승한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총상금 240만 달러)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2008년에 시작된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총 8승을 합작할 정도로 강세다. 만약 올해 대회서 고진영이 우승하면 대회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3번째 우승에 성공한다. 상승세의 고진영이 새로운 역사를 수립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파타야(태국)=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