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승려였던 그가 신대원에서 무릎 꿇은 이유는

입력 2025-02-21 00:24 수정 2025-02-23 12:23
장종현 백석대 총장이 20일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열린 신대원 신입생 영성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25년간의 수행을 압도한 열흘이었습니다.” 신입생 김엘리사(68)씨가 강도 높은 신학교 영성 훈련의 소감을 전했다. 국내 한 불교 종단에서 승려로 생활했던 그는 이제 백석대 신학대학원(이하 신대원)에서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20일 충남 천안 백석대 백석홀에서 열린 2025년 신입생 영성수련회에서 만난 그는 “새벽 5시 30분 기도부터 철야 예배까지 이어지는 훈련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했다”고 말했다.

백석대 신대원의 영성수련회는 단순한 오리엔테이션이 아니다. 신학적 지식 못지않게 영성을 강조하는 백석대의 학풍을 체득하는 시간이다. 올해는 김씨를 비롯한 240여명의 신입생과 80여명의 교수가 2주간 합숙하며 빡빡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신입생들은 하루 두 차례의 부흥집회와 성경 통독, 공동 기도훈련을 반복하며 신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영적 실천임을 몸소 체험했다.

김씨는 “불교는 철학적으로 정교하지만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한다”며 “백석대 신대원에서는 단순한 교리 공부를 넘어 신앙의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백석대 신대원 신입생들이 20일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

백석대 신대원의 신입생 영성수련회는 이른바 ‘무릎 신학’을 배우는 자리다. 기도와 말씀을 우선하는 신학 교육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백석총회(총회장 이규환 목사)의 신학적 정체성인 개혁주의생명신학과도 맞닿아 있다. 신입생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신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신앙과 영성의 실천이라는 점을 경험하게 된다. 신대원의 학풍을 대표하는 영성 수련 과정은 다른 신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백석대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임석순 신대원장은 “개혁주의생명신학에서는 ‘신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가르친다”며 “이 2주간의 수련이 신학생들의 신학 여정을 결정짓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선명 백석대 교목실장은 “교회가 어려워지고 신학교 입학생도 줄어드는 시대에 하나님 앞에 나아온 예비 목회자들을 보며 감동했다”며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백석대 신대원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장종현 백석대 총장이 20일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열린 신대원 신입생 영성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날 저녁 집회에서는 백석대 설립자인 장종현 총장이 신입생들 앞에 섰다. 장 총장은 ‘왜 신학은 학문이 아닙니까’라는 주제로 강의하며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과정이며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통해 깨닫는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학생들은 학문의 틀에 갇히지 말고 영적 생명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신학생이 된 스님 이야기
백석대 신대원 신입생인 김엘리사씨가 20일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열린 2025년 신입생 영성수련회에서 찬양을 부르고 있다.

25년간 불도를 닦은 그에게 4년 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고.

“3~4년 전부터 성경이 자꾸 보고 싶어졌어요. 기독교에 조예가 깊은 분에게 이야기했더니 ‘스님, 지금 성경을 빨리 읽어야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3일 동안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경을 손에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한 번을 정독하고 나자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막혔던 문제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찾던 것이 여기에 있구나 싶었어요.”

이후에도 성경을 계속 읽었다. 두 번째, 세 번째… 현재까지 일곱 번을 정독했다고 했다. 그리고 개종을 결심했다. ‘법각’이라는 법명을 버리고 세례를 받았다. 현재 그는 경기도 오산 푸른솔교회(김통상 목사)를 출석 중이다. 지난해에는 구약 열왕기하에 나오는 예언자의 이름을 따 ‘김엘리사’로 개명했다. 신학을 정식으로 배우기로 한 것도 이 무렵이다.

“한 백석대 동문 목사님이 ‘ATA(2년 과정) 말고 정규 3년 M.Div 과정을 해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해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김 씨는 백석대 신대원 신입생이 됐다. 성경을 통해 깨달은 내용 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 비유를 꼽았다.

“예수님은 ‘내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도 열매를 맺는다’(요 15:5)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이 단순한 비유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곱씹을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말라 죽듯이, 신앙도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수행과 기독교의 기도가 어떻게 다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불교는 ‘정(靜) 속의 정(靜)’, 즉 고요함 속에서 또 다른 고요함을 찾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기도하고 찬양하며 손을 들고 몸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깊은 은혜와 깨달음을 얻는 ‘동중정(動中靜)’의 측면도 있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깊이 있는 영성이라는 걸 느낍니다.”

김씨는 이제 신대원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하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 한다.

“유교 불교를 넘어 기독교 진리 전파에 힘쓰는 영성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 남은 길도 맡기겠습니다.”

천안=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