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제도의 폭력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함이 ‘미키 17’의 놀라운 힘”

입력 2025-02-20 17:28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20일 열린 영화 '미키17'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 배우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 최두호 프로듀서(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뛰어난 감독은 대중이 늘 봐온 배우에게서 낯선 얼굴을 찾아내고, 익숙한 인물들로 신선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봉준호 감독이 ‘미키 17’을 통해 관객들에게 선사할 충격은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운 연기를 선보인 배우 나오미 애키와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이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영화에서 악랄한 독재자 케네스 마샬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는 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너무 놀라 이 배역이 나한테 주어진 게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을 때 날 믿어준 것에 대해 봉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위험한 실험에 투입돼 계속해서 죽음을 반복하는 힘없는 미키(로버트 패틴슨)와 대립하는 마샬은 인종주의와 파시즘, 성차별적 사고를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정치인이다.

러팔로는 “실패한 독재자들을 우리가 오랜 세월 봐오지 않았나. 마샬의 모습에서 과거 여러 정치인의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며 “마치 영화가 예언한 것처럼 최근에 현실에 나타난 일들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름끼치게 현실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독재자를 연기한 경험에 대해선 “마샬은 행성에 원래 살던 종족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폭력을 자행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결국 마틴 루터 킹이나 간디의 비폭력 운동이 폭력보다 큰 변화를 만들었다”며 “국가나 제도가 가진 폭력은 압도적이고 극단적이지만 우리가 가진 것은 결국 사람의 힘이고, 그 힘의 근원에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 ‘옥자’에서 봉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스티븐 연은 합리적이고 약삭빠른,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티모를 찰떡같이 소화해 냈다.

스티븐 연은 “티모의 현실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기술은 어려운 성장과정 때문에 나타났을 거라 분석했다. 선택에 있어 옳고 그름보다 생존 가능성, ‘어떤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일까’를 고민하는 인물”이라며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쁨이 배가 됐고, 봉 감독님과 다시 한 번 일할 수 있게 돼 영광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봉 감독은 “‘땀냄새 나는 SF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였고, 스티븐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었다”며 “‘배바지’ 같은 걸 입고 나와 사채업자한테 쫓기는, SF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준 배우”라고 극찬했다.

나오미 애키는 미키를 든든하게 지키는 여자친구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면모로 결국 미래의 지도자가 된다. 애키는 “최고의 지도자, 최고의 영웅은 결국 영광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며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는 것,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큰 눈사태를 일으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놀라운 힘”이라고 강조했다.

봉 감독은 영화의 메시지와 한국의 정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는 “‘기생충’을 두고 자본주의를 풍자, 비판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깃발을 들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미키 17’ 역시 프린터에서 출력되는 자기 몸을 봤을 때 미키의 기분은 어떨까 등에 대해 구체적인 감정을 공유하려 했다”며 “메시지 분석은 사회과학 서적에서 잘 하는 것이고, 영화는 그 틈바구니에서 숨쉬는 인간들의 감정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상계엄 사태는 생경한 일이었지만 우리 일상은 지금도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며 “계엄을 이미 극복한 우리들의 자랑스런 모습이다. ‘미키 17’이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