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시장 뒷골목 ‘재즈 클럽’…60대에 이룬 꿈

입력 2025-02-22 04:01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재래시장에 위치한 재즈클럽 '사운드독'의 전경. 박주원 인턴기자

낯선 풍경이 주는 이끌림이 있다. 서울 용산구 후암 재래시장에 위치한 재즈 클럽 ‘사운드독’이 그런 곳이다. 60여년의 전통을 간직한 시장 뒷골목에서 사운드독은 매일 밤 8시 재즈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을 연다.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부조화가 이곳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지난 11일 후암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그런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농수산물 가게, 정육점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가게들을 지나 골목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사운드독의 검은색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시장의 소박한 분위기처럼 가게 내부는 단출했다. 벽에 붙은 오래된 공연 포스터와 CD가 인테리어의 거의 전부였다. 30여석 규모의 다소 비좁은 이 공간에 사장 김성(67)씨는 매일 오후 5~6시쯤 출근해 손님맞이를 시작한다. 1년 중 쉬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고 한다.

'사운드독'의 내부 모습. 유명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박주원 인턴기자

'사운드독'의 내부 모습. 여러 CD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박주원 인턴기자

이날의 공연은 ‘잼 세션(jam session)’이었다. 잼 세션은 연주를 리드하는 ‘호스트’와 참가자가 즉석에서 합주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유명 연주자인 호스트와 연주할 기회를 잡기 위해 음악 전공생이나 무명 연주자 등 다양한 참가자가 각지에서 모인다.

다만 이런 날엔 일반 손님을 받기 어려워 매출이 저조한 편이다. 김씨는 “그래도 더욱 많은 연주자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려고 매주 화요일마다 잼 세션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로 온 이도현(26)씨는 “이렇게 많은 연주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재즈 클럽이 많이 없다”고 했다.

“어울리지 않는 옷” 걱정에도 버틴 강단

사운드독은 2017년 2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김씨는 “일부러 재래시장에 터를 잡은 건 아니었다”고 했다. 이유는 딱 하나,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었다. 그의 계획을 들은 지인들은 다들 만류했다. 상인들마저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곧 망할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개업 초기엔 일주일에 한 번만 열던 공연마저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주자를 섭외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시장 뒷골목에 문을 연 무명 클럽에 선뜻 와주겠다는 사람이 적었다. 김씨는 굴하지 않고 섭외하고 싶은 연주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연락했다고 한다. 그는 “섭외의 기준은 딱 하나였다”며 “30년 재즈 마니아인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주자를 부르고 싶었다”고 했다.

'사운드독'의 사장 김성씨. 박주원 인턴기자

그의 재즈에 대한 집념을 연주자들도 알아주기 시작했다. “매출이 오르는 공연보다 하고 싶은 공연을 하라”는 그의 말에 점점 더 많은 연주자가 사운드독의 문을 두드렸다. 일주일에 한 번 열던 공연이 주 2~3회에서 주 7회까지 늘어났다. 김씨는 “‘아무도 안 와도 된다. 나라도 듣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버텼다”고 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재래시장과 재즈의 ‘어색한 동거’가 외려 강점이 됐다. 재즈 팬 외에도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반한 젊은층 손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이날 잼 세션의 호스트였던 드러머 이성구(46)씨와 기타리스트 나영찬(33)씨는 “국내외를 통틀어 재래시장 안에 있는 재즈 클럽은 사운드독밖에 보지 못했다”며 “이것이 바로 이곳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30년 재즈 마니아, 60대에 이룬 꿈

김씨는 서른 살 때 우연한 계기로 재즈에 빠진 뒤 이른바 ‘골수팬’이 됐다. 60대인 지금은 생업이 됐으니 재즈는 그에게 삶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는 “30년이면 강산이 3번은 바뀌는 세월”이라며 “재즈를 들을 때면 지나온 인생의 희로애락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가 재즈에 가장 심취했던 것은 20여년 전 사업에 실패했을 때였다. 전세금 빼곤 무일푼이었던 시절 약 한 달간 방에 틀어박혀 영화 ‘캔사스 시티’(1996)의 OST ‘솔리튜드(solitude)’만 들었다고 한다. 두 대의 콘트라베이스가 어우러지는 곡으로, 한국어명은 ‘고독’이다. 그는 고독에 빠져 실패를 수차례 복기한 뒤에야 다시 밖으로 나와 PC방과 편의점 사업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그렇게 60대를 앞뒀을 무렵 또 한 번의 수렁에 빠졌다. 성실한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왔지만 정작 ‘김성’이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회의감이 그를 덮쳤다. 방황하던 그는 이내 자신의 내면에 있던 ‘초가집’을 찾았다고 한다. 허름하고 볼품없지만 모진 비바람에도 가족을 지켜냈던 초가집이었다. 김씨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며 “충분히 잘해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젠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운드독'의 내부. 박주원 인턴기자

임대료 걱정에 재래시장으로 왔지만 라이브 클럽의 생명인 ‘소리’와 타협할 순 없었다. 그랜드 피아노부터 드럼, 고가의 스피커까지 최고 수준의 장비들을 준비했다. 연주자들에게도 업계 최고의 페이를 챙겨줬다. 지금은 공연비로만 한 달에 900만원이 나간다. 그는 “어차피 수익을 바라고 차린 가게가 아니다”라며 “죽기 전에 내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사운드독' 외벽에 걸려있는 공연 일정. 365일 재즈 공연이 열린다. 박주원 인턴기자

시장 뒷골목의 무명 클럽은 이제 MZ세대의 ‘핫플레스’이자 뮤지션들의 인기 무대가 됐다. 국내 최고의 재즈 축제인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초청 아티스트들도 이곳에서 공연을 한다. 재즈를 전혀 모르는 손님들도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게시물을 보고 왔다가 라이브 공연의 생생함에 반해 단골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씨는 “꿈을 이룬 지금에야 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것 같다”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운드독을 찾는 고객들이 다른 것보다도 라이브 공연의 감동을 꼭 느꼈으면 좋겠어요. 꼭 큰 무대가 아니라 시장 한구석의 작은 가게에서도 이런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박주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