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석유화학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하고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유동성 확보를 통해 생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 과잉에 따른 업황 불황이 당분간 지속될 공산이 큰 만큼 근본적인 재무 부담을 덜어내긴 어려울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연초 회사채 수요예측에 들어간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스, SK지오센트릭, SK인천석유화학, SK케미칼, HD현대케미칼, 한솔케미칼, 국도화학 등 석유화학 기업 8곳은 최근 발행 규모를 확정했다. 이들 기업이 조달한 자금은 1조9000억원으로 당초 목표치 1조800억원보다 76%가량 많다.
국내 1위 에폭시 수지 기업 국도화학은 전날 공모채 발행을 위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400억원 모집에 500억원 주문을 받았다. LG화학은 3000억원을 목표로 했지만 1조6750억원이 몰리며 최종 6000억원을 발행했다. SK지오센트릭과 한화토탈에너지스도 각각 3000억원, 3200억원을 조달하며 목표치를 웃돈 성적표를 받았다.
이번 자금 확보는 장기적인 성장 동력 발굴보다는 일시적인 유동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8개 기업이 조달할 1조9000억원의 자금 중 대부분인 1조8862억원이 채무 상환에 투입된다. 생존을 위해 자금 수혈이 절실한 탓이다. 지난해 LG화학·롯데케미칼·SKC·금호석유화학·여천NCC·HD현대케미칼 6개사의 영업손실은 2825억원에 이른다.
건전성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 작업도 한창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날 파키스탄 자회사 LCPL의 보유 지분 75.01% 전량을 파키스탄계 사모펀드 투자사인 API와 아랍에미리트(UAE) 석유 유통사 몽타주 오일 DMCC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 대금은 979억원이다. 포트폴리오 전환과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비핵심 자산 정리 작업의 일환이다. 효성화학은 최근 알짜 사업부인 특수가스 사업부를 계열사인 효성티앤씨에 매각했다. LG화학도 스티렌모노머(SM), 에틸렌글리콜(EG) 등의 생산을 줄줄이 중단한 데 이어 친환경 소재 PBAT 공장도 가동을 무기한 연기했다.
구조조정이 본격화했지만 중국발 공급 과잉이 여전한 만큼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합성 고무 등 일부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은 시황이 비교적 양호하지만 범용 석화 제품은 중국산 제품에 비해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까지 석유화학 산업에서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이들은 원유에서 곧바로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기술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또 다른 위협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가 풀려 국내 석유화학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중국 제품을 밀어낼 만한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