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녀올게” 하고 병원으로 간 그 장로의 나눔

입력 2025-02-19 11:51 수정 2025-02-20 18:37
이수권 장로가 2020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창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아현성결교회에서 신장기증인 감사패를 수여받은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평생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84세 장로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을 실천했다. 생전에 생면부지의 이웃에게 신장을 기증한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하며 삶의 마지막까지 베풂을 실천했다.

19일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박진탁 이사장)에 따르면 생전 신장 기증인이었던 故 이수권 장로(1941~2025)가 지난 12일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나눔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994년, 당시 53세였던 이 장로는 가족들에게 ‘여행을 다녀온다’며 일주일간 집을 비웠다.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은 여행지가 아닌 병원이었다. 신장 기능을 잃고 투병 중인 환자들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염려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수술을 감행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그가 택한 길은 휴식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 생명을 나누기 위한 길이였다. 이후 그는 신장 기증인들을 돕기 위해 간병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렸다는 책임감과 감사함을 품고, 자신의 삶을 더욱 헌신적으로 살아갔다.

이수권 장로(맨 왼쪽)와 가족들이 2023년 8월 거제도에서 가족여행 도중에 찍은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경기 파주시 큰기쁨교회에서 장로로 섬긴 그는 신앙 안에서 ‘나눔’을 삶의 원칙으로 삼았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신실한 믿음을 지켜왔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병마 속에서도 전도와 봉사에 힘썼고 나눔의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심혈관 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악화됐지만 그는 또 한 번 결심했다. 자신의 몸을 의학 연구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일 갑작스러운 소화 불량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이틀 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그의 뜻을 받들어 시신을 기증했다. 딸 이지현(46)씨는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사실 만큼 선한 분이셨다”며 “나눔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늘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며느리 이경희(53)씨도 “아버지는 가족 간의 화목과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며 “그 뜻을 따라 우리도 형제간의 사랑과 믿음 생활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는 “사랑과 헌신을 기반으로 한 이수권 장로의 기증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의학 발전에도 기여하며 길이 남을 것”이라며 “그가 삶으로 보여주신 나눔의 가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