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영향에 캐나다 진보 ‘부활’…자유당 급등

입력 2025-02-18 16:11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이웃 국가 캐나다의 정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높은 물가, 이민 문제 등으로 인해 역사적 대패가 예상되던 진보 성향 여당 자유당이 반등을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와 유사한 성향의 보수 대신 ‘반트럼프’ 이미지가 강한 진보로 표심이 이동한 결과로 해석된다.

16일(현지시간) 캐나다 선거 통계 사이트 338캐나다에 따르면 자유당은 29%의 지지율로 전주 대비 3%포인트 상승했다. 보수당은 전주와 동일한 42%를 기록했다. 자유당은 의석수도 101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전주(84석) 대비 20석 안팎 늘렸다.

338캐나다 캡처

자유당은 지난 달 5일 여론조사에선 20%에 불과했다. 자유당보다 더 강한 진보 성향을 띄는 신민당에 불과 1%포인트 앞서는 상황이었다. 소선거구제인 캐나다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자유당의 의석 예측수는 더 처참했다. 같은 시점 자유당의 의석 예측치는 하원 338석 중 35석에 불과했다. 지역 정당인 퀘백 블록(45석)에도 밀렸다. 반면 보수당은 45%의 지지율로 대부분의 의석을 휩쓸어 236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를 고려하면 한 달 여만에 상황이 완전히 선거 판세가 뒤집어진 셈이다. 반전의 시작은 우선 지난 달 초 9년 간 집권하며 10%대까지 지지율이 떨어졌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트뤼도가 물러나며 자유당은 곧바로 차기 총리가 될 당 대표 선출 작업에 들어갔다. 거의 10년 만에 열리는 자유당 리더십 경쟁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캐나다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 총재가 15일(현지시간) 수도 오타와의 한 펍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키 경기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특히 자유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 총재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캐나다 여론조사 기관 레제(Léger)가 10일 실시한 차기 자유당 대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니는 68%를 얻어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14%)을 크게 앞섰다.

카니 전 총재는 캐나다은행 총재를 거친 뒤 역사상 최초로 비영국인 출신 영란은행 총재가 됐다. 그는 캐나다은행 총재로는 금융위기를, 영란은행 총재로는 브렉시트에 유연하게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자유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던 물가 급상승 등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또한 그는 지난해 트뤼도 총리의 요청으로 지난해 자유당에 입당했지만 정계 경력이 짧아 정권심판론 공세에서 자유롭다. 또한 캐나다은행 총재 시절엔 보수당 정부와 함께 일한 경험도 있어 중도 이미지도 강하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7일(현지시간) 캐나다 국기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는 자유당에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도 호재로 작용했다. 취임 전부터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조롱하던 트럼프는 취임 후엔 본격적으로 관세 등 캐나다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트뤼도 총리는 ‘애국심’에 호소하며 트럼프에 각을 세웠고 트럼프의 공세가 강해질 수록 트뤼도와 자유당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다. 특히 보수당이 승리할 경우 차기 총리가 될 피에르 폴리에브 캐나다 보수당 대표는 트럼프의 측근인 머스크의 지지를 받는 등 ‘친트럼프’ 이미지가 강하다.

이같은 요인으로 인해 이미 일부 여론조사에선 자유당이 보수당을 뒤집거나 오차범위 내에 진입한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13일 메인스트리트 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유당은 36%, 보수당은 39%로 오차범위(±2.9%포인트) 내 접전이었다. 특히 카니가 자유당 대표가 되면 41%로 보수당(39%)을 역전할 것으로 전망됐다. 레제가 10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카니를 자유당 대표로 전제하면 자유당과 보수당은 37%로 동률을 이루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년 동안 자유당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선거 패배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급락세를 뒤집고 있다. 명백한 부활의 핵심 요인은 트럼프”라며 “보수당은 트뤼도를 공격해 상당한 성과를 얻었지만 이제는 당파성을 대체하는 민족주의로 인해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캐나다 국회. 게티이미지뱅크

캐나다는 올해 10월 이전 총선을 치뤄야하는 상황이다. 다만 내달 9일로 예상되는 자유당 대표 선거 이후 조기 해산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았다. 보수당과 신민당 등 야당은 내달 24일 의회 개원 이후 내각 불신임 투표를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 상황이 변화하며 자유당의 신임 대표가 더 이른 의회 해산을 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민당에선 12일 후보자들에게 메모를 통해 “마크 카니가 자유당이 대표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카니가 당선되면 그 직후 선거를 실시할 의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