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멍드는 시청각장애인들…“세심한 접근 필요”

입력 2025-02-18 00:30
국내 시청각장애인은 약 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돕는 곳은 많지 않다. 그나마 이런 역할을 하는 곳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로부터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시청각장애인

시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우선 밀알복지재단 산하에 있는 헬렌켈러센터를 꼽을 수 있다. 2019년 4월 개관한 이곳은 전국에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을 상대로 점자 교육을 진행하고 점자정보단말기 지원하면서 자조 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이곳을 시청각장애인 전담 기관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헬렌켈러센터 홍유미 센터장은 “정부가 이제야 이들을 향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세웅씨가 헬렌켈러센터에서 지원 받은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를 사용하고 있다.

헬렌켈러센터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시청각장애인을 찾는 일은 같은 고충을 겪는 시청각장애인을 통해서일 때가 많다. 시청각장애가 있는 아동의 경우 병원을 통해 확인하거나,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의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확인하곤 한다. 홍 센터장은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워 우리 기관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헬렌켈러센터 외에도 시청각장애인을 돕는 곳으로는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손잡다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이하 손잡다)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역할을 하는 단체 대다수가 수도권에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수도권 밖에 거주하는 시청각장애인은 관련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울 때가 많다. 홍 센터장은 “지방에 거주하는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지역의 복지관을 찾더라도 시청각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필요한 보행 훈련이나 점자 훈련 등을 받을 수 없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물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기관을 세우는 것만이 해법일 순 없다. 국내에 존재하는 시청각장애인 전문가 수가 매우 적은 만큼 센터가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복지관 등에 근무하는 이들이 시청각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촉수화(촉감을 통한 수어 통역)를 익힐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송희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등이 복지관 근무자 등을 상대로 각종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협업을 용이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지역별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미국의 관련 기관들은 시청각장애인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 문제, 세심한 접근 필요

시청각장애는 장애 정도와 유형에 따라 의사소통 수단이 달라진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중 어떤 장애가 먼저 발생했는지, 선천적 장애인지 중도 발생 장애인지에 따라 의사소통과 언어 발달 정도가 다르다. 가령 일본에서는 시청각장애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없으나 보이는 정도와 들리는 정도에 따라 전맹농, 약시농, 전맹난청, 약시난청으로 분류하고 있다. 장애 특성과 연령에 따라 체득한 의사소통 방식이 다르고, 사용할 수 있는 보조기기도 달라지는 만큼 ‘개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청각장애가 먼저 발생한 농기반 시청각장애인은 수화를 활용할 줄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촉수화라는 독특한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한다. 하지만 촉수화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장애가 있는 당사자가 통역사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점, 공간 감각이 없어 손의 위치와 모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익히기가 쉽지 않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사의 전문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현재 시청각장애인에게 매칭되는 활동지원사는 시청각장애인에게 특화된 인력이 아니어서 관련 지식이 부족할 때가 많다.

시청각장애가 있는 윤세웅(51)씨는 “처음 나와 연결된 활동지 원사는 시청각장애인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자조 모임 ‘손잡다’를 결성한 이후 현재까지 이 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조원석(31)씨는 시청각장애인과 매칭이 된 활동지원사들을 대상으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활동지원사를 교육해달라는 시청각장애인들의 요구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헬렌켈러센터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 송년회에서 홍유미 센터장이 인사말 전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는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홍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활동지원사 제도가 이미 정착된 만큼 앞으로는 SSP(시청각장애인 전문 활동 지원사) 체제가 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 지원은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활동지원사가 하고, 전문 통역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특수통역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사진=박상희 이가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