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36) “오늘도 그물 깁는 어부들에게 배웁니다”

입력 2025-02-17 10:06 수정 2025-02-17 10:19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마태복음 4장 21절에는 아버지 세베대가 두 아들인 야고보, 요한과 함께 그물을 깁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세베대는 중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합니다. 어부들에게 그물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고기를 많이 그물 속으로 몰아넣어도 그물에 작은 구멍이 있으면 순식간에 고기가 몽땅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어부 세계에서는 그물을 수선할 줄 아는 사람이 베테랑급 어부 소리를 듣습니다.

그물을 잘 고쳐야 고기를 많이 잡습니다. 요한의 아버지는 엄하게 그 원리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좋은 제자가 됐습니다.

어부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 속여도 그물코는 절대 속일 수 없다.” 이 말은 그물이 크고 넓어서 그중에 1㎝라도 한 칸을 더한다거나 모자라게 만들면 끝자락에는 1m가 벌어지기 때문에 고기 잡는 그물이란 아무리 급하고 바빠도 정확하게 그물코가 맞아야 그물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그물도 한 땀 한 땀 정확하게 순서를 맞추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요. 어부들이 그물 수리하는 현장을 찾아가 보면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 원리를 베드로와 요한은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가끔 그물코를 엉터리로 만들어, 좋은 제자의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하지 못했을까요. 우리도 신학교를 가고 처음 성령을 체험하던 뜨거운 가슴을 품었던 첫사랑을 잊고 엉터리 그물코를 만들고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저 큰 그물이 한 코만 틀려도 그물은 중심을 잃고 찢어집니다. 그물의 원리는 놀랍습니다. 전도가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 마을에서 그물 수선의 달인으로 불리는 어부 조기성씨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70세 되신 이분은 지금 혼자 살고 계십니다. 가끔 길에서 만나면 과음을 한 탓에 비틀거리며 걷기도 하지만, 제게는 깍듯이 인사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마치 수가성 여인 같은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수가성 여인 이야기를 이어간 이유는 이분들 때문입니다. 1000만원이 수중에 생기면 읍내 다방에 가서 돈이 떨어질 때까지 쓰고 거기에 더해 빚을 한 짐 지고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와 다시 더위와 추위를 이기며 손이 부르트도록 그물을 고칩니다.

기술은 최고인데 복음이 없으니 적자 인생을 사신 조기상씨가 이번 주부터 교회 나오기로 철썩같이 약속했습니다. 기도하며 밀고 가려고 저도 단단히 준비합니다.

이런 어부를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요. 만약 예수님께 묻는다면 “나도 사마리아에서 했단다” 하고 답하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게 하려면 작심 3일이 반복되는 약속을 끝없이 해야 하고 전도자에게 주어진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에 들어가야 합니다.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을 가진 이들을 변화시키는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그 기간은 하세월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좁고 좁은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또 시작하는 게 목회요, 전도요, 선교입니다. 아주 멋진 일이지요. 동의하십니까?

수가성 여인을 도시에서 찾으려면 참 여렵다고 합니다. 위층과 아래층에도 누가 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낙도에는 자신이 수가성 여인이라고 본인이 밝히기도 하지만, 때때로 이웃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섬사람들이 누가 수가성 여인인지 전부 고자질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왜 그리도 많은지 가정마다 며느리 사위 친척, 안 걸리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가끔 방송을 보면 목사님들이 교인 자랑과 칭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높은 지위에 계시고 존경받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없던 저희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개척해 5년이 지난 지금 제가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돌아보면 다들 부끄럽게 살아왔던 수가성 여인 같은 처지와 형편으로 살아온 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자랑할 것 없는 분들이지만, 주님은 아흔아홉명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이 한 분 한 분으로 인해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저 역시 필요합니다.

진실하지 못하고 관대하지 못하고 때로는 거짓말도 대수롭지 않게 하는 그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닫힐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를 든든히 잡고 다시 그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수가성 우물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한 코 한 코 그물을 붙잡고 씨름하는 어부들이 오히려 스승으로 보이는 이곳이 낙도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