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은 줄고 연탄 후원도 급감했다. 자살률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관심은 온통 정치에 쏠려 있다. 이럴수록 교회가 어려운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 12:15)는 성경의 가르침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후 두 달이 넘도록 한국 사회는 탄핵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빅카인즈 데이터 분석 결과 10대 종합일간지에서 ‘윤석열’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 수는 취임(2022년 5월 10일) 이후 계엄 전(2024년 12월 2일)까지 총 21만4583건, 하루 평균 123.5건이었다. 하지만 계엄 이후(2024년 12월 3일~2025년 2월 9일) 관련 기사는 3만4000건에 하루 평균 492.8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언론이 권력 중심의 보도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며 “교회 역시 약자를 위한 역할을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겨울철 필수 지원은 위기를 맞았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연탄 후원 규모는 전년 대비 68% 감소해 54만4440장에 그쳤다. 10월부터 3개월간 모금으로 답지한 연탄은 132만8030장으로 당초 목표였던 300만장의 44.2%에 불과했다. 연탄 후원은 사회적 불안정 속에 급감했지만 난방비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취약계층에는 필수적인 지원이다.
독감 확산으로 혈액 수급도 위태롭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6일 기준 혈액 보유량은 4.9일치에 불과하다. 5일분 미만이면 ‘관심’, 3일 미만이면 ‘주의’ 단계가 발령된다.
노숙인 사역에 관한 관심도 정쟁에 묻혀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16일 겨자씨교회(김재영 목사) 산하 대방재가복지센터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김 목사는 “지난해 12월 3일 한 신문사가 ‘세계 장애인의 날’에 맞춰 지적 장애를 가진 노숙인을 취재하려 했지만 계엄령 발동으로 정치 기사가 이를 덮었다”고 밝혔다.
겨자씨교회는 ‘방배동 모자 사건’의 진위를 밝힌 교회로 세간에 알려졌는데 김 목사는 “이 사건도 정치적 현안이 겹쳤다면 덮였을 것”이라며 “나라가 정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고립된 사람들은 더욱 고립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방배동 모자 사건은 2020년 서울 서초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의 어머니가 숨진 지 약 반년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를 돌보며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기도로 동행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잃어가는 약자들에 대한 관심도 요구된다.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는 “자살은 사회 문제이자 경제 문제다. 40~50대 남성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이들 대부분이 소상공인”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사회적 약자와 참사 피해자들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23년 통계에서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7.3명으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 대표는 “자살 유가족 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청원 서명도 국회 발표조차 하지 못했다”며 “정치적 해석을 우려해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교회 후원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다. 2023년 2월 인천 미추홀구에서 첫 번째 전세 사기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최근 2주기를 맞았다. 사역단체 ‘희년함께’를 도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는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전세 사기 피해자는 2만5000명 이상이며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원 체계는 여전히 혼선 상태”라고 밝혔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도 현재 진행형이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유가족들은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교회가 끝까지 우리의 아픔을 잊지 않고 동행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한국교회가 정치적 논쟁을 넘어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동민 백석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위기의 순간에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다”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919년 3·1운동 당시 선교사들은 부상자를 돌보며 민초들과 연대했다. 반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력과의 관계 형성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가 지금처럼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면 쇠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명을 공개한 예장 고신 소속 목사와 교인 38명은 14일 국민일보에 ‘교회의 정치 세력화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광고 형식으로 게재했다. 이들은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 이후 대한민국이 극심한 혼란과 갈등에 휩싸였다. 개신교회 일각에서 특정 정당과 정치 입장만이 옳다며 교회와 광장에서 부르짖고 있다”며 “그로 인해 복음과 교회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심히 우려한다”고 했다.
성명 작성자인 안재경 온생명교회 목사는 “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지만, 연약한 사람을 일으키는 것이 복음의 실천”이라며 “그러나 정치적으로 누가 옳다 그르다 하는 말로 설교단을 정치단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고 힘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목사는 “한국교회는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김동규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