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도 이웃, 조건 없이 사랑하라”…본능 반하는 예수의 평지 설교

입력 2025-02-13 14:30
신약성경 누가복음 6장에 기록된 ‘평지 설교’에는 인간의 본능과 세상의 우선순위를 거스르는 예수의 가르침이 다수 등장한다. 사진은 예수가 평지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담은 AI 이미지. 픽사베이

신약성경에 언급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황금률’(The Golden Rule)로 불린다. 타 종교와 그리스·유교 철학 등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적잖아 ‘인류 보편의 원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견 비슷해 보이는 이들 가르침과 황금률과 차이는 그 전제에 있다. 예수는 황금률 적용 대상을 ‘원수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이들’로 정의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만 사랑을 주는 건 “죄인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눅 6:32~34)

북미 전역 1800여 개 라디오 방송국에 설교를 송출하는 미디어 사역자이자 40여년간 오하이오주 파크사이드교회에서 목회해 온 저자는 자력으로 기독교의 황금률을 실천하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본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이 가르침을 전한 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는 기독교인이 황금률의 진의대로 실천한다면 “(황금률과는) 전혀 다르게 굴러가는 이 세상에 초자연적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황금률은 누가복음뿐 아니라 같은 복음서인 마태복음에도 등장하지만 관련 해설이 상세히 달린 건 전자다. 특히 황금률이 실린 누가복음 6장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山上垂訓)과 비교되며 ‘평지 설교’로 불린다. 아픈 자를 치료하는 예수의 명성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온 이들을 대상으로 평지에 서서 전한 말씀인 데다 메시지 구조도 산상수훈의 팔복(八福)과 유사해서다.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설명하는 팔복의 문장 구조인 ‘OO 한 자는 복이 있나니’의 형태가 평지 설교에서도 반복해 등장하는 것도 한 이유다. 다만 팔복이 복을 받는 8가지 상황을 열거한다면 평지 설교는 복과 화(禍)를 부르는 상태를 각각 4개씩 제시한다는 차이가 있다.

저자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산상수훈이 아닌 평지 설교에 집중한 건 그 속에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삶’이 설명돼 있어서다. 그는 평지 설교를 ‘기독교인의 삶을 위한 선언문’(the christian manifesto)으로 명명한다. 저자는 이 선언에 ‘진정한 기독교’에 관한 급진적 이야기가 담겼으며 교회가 이를 가감 없이 받아들일 때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6장에 기록된 ‘평지 설교’에는 인간의 본능과 세상의 우선순위를 거스르는 예수의 가르침이 다수 등장한다.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의 ‘그리스도와 백부장’. 평지 설교 직후 등장하는 백부장 이야기(눅 7장)에서 예수는 사회적 약자를 이웃 삼아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모범을 보인다. 위키피디아 제공

평지 설교에 드러난 진정한 기독교의 특질은 ‘세상의 우선순위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는 “가난하고 주리며 미움받는 이에겐 복을 약속하고 부유하고 배부르며 모든 이에게 추앙받는 이에겐 도리어 비참함을” 선포한다. 인간의 본능과 직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가르침이다.

황금률의 대상에 원수를 포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예수는 당시 유대인이 백안시하던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들며 이웃의 범위를 재정의했다. 저자는 현대 기독교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전쟁 난민이나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낙태를 고민하는 여성, 성 정체성 혼란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이웃으로 품으며 예수의 사랑을 보여주라는 주문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회 변화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그 대상의 아픔을 돌아보는 실천에 이르지 못한다면 주님의 뜻을 오해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그는 “우리 사회엔 ‘내 신앙이나 윤리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되돌려줄 필요 없이 사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 거야’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넘쳐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예수는 평지 설교 후 이방인 백부장과 아들을 잃은 유대인 과부를 도우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모본을 보여줬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불편을 느낄 내용으로 가득 찬 예수의 평지 설교를 간명하게 설명한 책이다. 신학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 찬송가 가사를 인용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대중 친화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현대 기독교가 무기력한 가장 큰 이유는 예수께서 요구하는 급진적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비평도 인상 깊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