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무가 큰 그늘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가진 사람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탱크’ 최경주(54·SK텔레콤)는 우리나라 골프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큰 나무이자 키다리 아저씨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2000년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해 통산 8승을 거뒀다.
2020년부터는 만50세 이상 선수들이 참여하는 시니어투어에서 활동하면서 통산 2승을 올리고 있다. PGA투어와 시니어투어 한국인 첫 우승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작년엔 메이저대회인 더 시니어 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최경주가 PGA투어와 시니어투어에서 거둔 우승 중 극적이지 않은 건 하나도 없다.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오롯이 기도와 자신의 땀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걸어 온 길은 그 자체로 한국 골프의 역사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최경주가 투어에서 승수 쌓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도 미국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둠을 밝혀 길을 터주는 등대불과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가 미국 진출 이후 꾸준히 1년에 한 두 차례 국내 대회에 출전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KPGA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을 만들어 올해로 14회째 개최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꿈나무 발굴과 육성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2007년에 설립한 최경주재단을 통해서다. 골프꿈나무를 선발, 육성하고 있는데 올해까지 총 353명을 배출했다.
KLPGA투어의 박민지(26)와 이가영(25·이상 NH투자증권), 올해부터 DP월드투어서 활동하는 김민규(23·종근당), 2019년 KPGA투어 신인왕 이재경(25) 등이 최경주재단 골프꿈나무 출신들이다.
최경주재단 골프꿈나무 지원 사업은 골프에 꿈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청소년들이 ‘제2의 최경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원 프로그램과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2010년 부터 미국, 태국, 중국 등지에서 동계 전지 훈련을 실시해 왔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기인 2020년 부터는 줄곧 최경주 이사장의 자택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다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던가. 전훈 기간 내내 최 이사장의 아내 김현정씨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손수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은 물론 꿈나무들의 인성 교육까지 담당한다고 한다.
작년 12월 26일부터 시작된 5주 일정의 2025년 동계 훈련도 지난 3일 성공리에 마무리 됐다. 올해도 변함없이 SK텔레콤, 슈페리어, 바이네르, 포시즌, 스릭슨 등이 후원으로 힘을 보탰다.
동계 훈련은 최경주 이사장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골프 꿈나무들의 집중 성장 플랫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골프 기량 향상은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할 인성 교육을 통해 부쩍 성장하게 된다.
그것은 골프 꿈나무들이 전훈을 마친 뒤 이구동성으로 나타낸 소감으로 충분히 가늠된다.
“그동안 쫓기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동계훈련을 통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대로 이 마음 유지해서 편하게 모든 일에 임할 것이다”
“항상 긍적적인 생각과 기도로 마음의 평안을 찾을수 있게 된 것이 나의 가장 큰 변화다. 올 한해 계속 기도하며 평안을 찾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게 나와의 약속이다” 등등.
최경주는 아이들이 전훈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해 가는 모습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자신은 아이들이 매너리즘이라는 알을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 마음껏 비상하도록 하는 조탁(彫琢)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고 했다.
또 자신도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된다고 한다. 다시금 자신을 뒤돌아 보는 계기도 된다고 했다. 그런 그가 골프 외에 다른 걸 생각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입담이 좋기로 소문난 그가 방송 연예 프로그램의 숱한 러브콜을 사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골프의 정신, 가치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 때문이란다. 역시 최경주답다. 바로 그런 점이 우리가 그를 진정한 골프 레전드로 칭송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