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종전’ 직거래 나선 트럼프…젤렌스키 ‘패싱 ’현실화되나

입력 2025-02-13 10: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당시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 중재를 발표하며 가까운 시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에 나서면서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푸틴과 협상에 나서면서 유럽이 충격에 빠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트럼프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뒤 백악관에서 진행된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 취임 선서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푸틴 대통령을 주로 전화로 대응할 것이지만 우리는 결국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는 아마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회동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우리는 그(푸틴)가 이곳(미국)에 오고 내가 그곳(러시아)에 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상호 방문 가능성도 거론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종전 협상 개시는 전날 미국과 러시아가 수감자 맞교환을 진행하며 관계 개선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발표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가 푸틴과 직접 협상에 나설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으로부터 고립돼 온 푸틴은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전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유럽연합(EU)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경제·군사 원조를 이어가며 러시아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푸틴과의 친밀했던 개인적 관계를 바탕으로 종전을 위한 ‘직거래’에 나선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계획은 그 갑작스러움과 규모로 우크라이나의 동맹국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며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몇년 간 두려워했던 순간이 찾아왔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푸틴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미국·유럽의 지원을 받아 푸틴에 맞서온 젤렌스키 대통령은 종전 협상에서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날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한 듯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문제와 관련, “나는 그것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원칙적으로는 ‘지지’한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트럼프는 또 우크라이나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전 수준으로 영토를 탈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라면서 “일부는 되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이날 트럼프 발언에 대해 “지난 3년간의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을 뒤집었다”며 “트럼프가 푸틴과의 대화를 통해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배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합의를 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대한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날 취재진이 평화 협상에서 우크라이나가 ‘동등한 구성원(equal member)’이냐고 묻자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들은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희토류 등 광물 협정을 통해 지속적인 군사 지원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젤렌스키는 이날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회담했다. 베센트 장관은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광물 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더 큰 평화 협정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지원 대가로 희토류 등을 요구했는데, 젤렌스키가 화답한 것이다. 젤렌스키는 14일 뮌헨 안보회의를 계기로 J 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만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호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은 종전협상에 우크라이나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 안보 고위 대표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보전은 무조건적”이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모든 협상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평화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포함해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