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푸틴·젤렌스키와 연쇄 통화…3년 맞은 우크라전 최대 분수령

입력 2025-02-13 06:5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연쇄 정상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 중재에 착수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이 개전 만 3년을 앞두고 최대 분수령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알리며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하는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막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그동안 취임 즉시 우크라이나전을 끝나겠다며 최우선 외교 과제가 우크라이나전 종식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트럼프는 이어 “푸틴과 상호방문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우리는 양측 협상팀이 (종전을 위한) 협상을 즉각 개시하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는 종전 협상팀 명단도 발표했다. 그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에게 협상을 이끌라고 지시했다”며 “협상이 성공할 것이라는 강력한 느낌이 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통화가 공개된 것은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7월 23일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는 이날 통화에 대해 “길고 매우 생산적인 전화 통화였다”고 설명했다. 크렘린궁도 푸틴과 트럼프가 거의 1시간 30분간 통화하며 전쟁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곧이어 별도의 게시물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했다고 밝히며 “그는 푸틴 대통령처럼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어리석은 전쟁을 멈출 때가 됐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축복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와 트럼프와 통화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젤렌스키도 트럼프와 통화 뒤 소셜미디어 ‘엑스’에 “트럼프 대통령과 외교 군사 경제 등 여러 측면을 논의했고, 트럼프는 푸틴이 그에게 한 말을 나에게 알려줬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미국의 힘이 우크라이나와 모든 파트너들과 함께 러시아를 평화로 이끌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는 특히 “우크라이나만큼 평화를 바라는 이들도 없다. 우리는 미국과 함께 러시아의 침략을 막고 지속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다음 단계를 계획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말했듯이 ‘해내자’”라고 적었다.

유엔(UN)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파르한 하크 유엔 대변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참여하는 전쟁 해결을 환영한다”며 “양측이 이 과정에 기꺼이 참여한다면 분명히 환영할 만한 발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종전 협상에 팔을 걷었지만 우크라이나 입장보다는 러시아 입장을 크게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경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해왔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에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장거리 전술 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현 상황에서 즉각적인 종전을 주장해왔다. 트럼프는 이날 통화 발표에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평화 협상에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날 통화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문제와 관련, “나는 그것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거래’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제공한 광범위한 군사 지원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로부터 희토류를 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을 방문 중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014년(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해) 이전의 영토 구획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현실적 목표”라고 말했다. 헤그세스는 “환상적인 목표를 좇는 것은 전쟁을 연장하고 더 많은 고통을 야기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군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이 트럼프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결국 러시아의 입장이 대폭 반영되는 방향으로 종전 협상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는 단순한 휴전이 아닌 우크라이나와 서방측의 광범위한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로 해석된다”며 “현재 우크라이나는 협상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가 발표한 미국 측 협상팀에 키스 켈로그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사가 빠지고 대신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대사가 들어간 것도 러시아에 유리한 협상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켈로그 특사는 대(對)러시아 강경파로 최근에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