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합작 속속 해체…전기차 침체, 트럼프 리스크 영향

입력 2025-02-13 11:00

배터리 업계에 들불처럼 번졌던 외국 기업과의 합작법인이 속속 해체되고 있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전기차 ‘캐즘’(수요 침체)에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다. 기업들은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전방위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에서 유망 사업에 제한된 자원을 선택·집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11일 중국 업체와 함께 추진했던 니켈 정제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했다고 공시했다. 이차전지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도 지난해 9월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2000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전구체 생산 및 니켈 제련 합작공장 투자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지난해 12월 이차전지용 전구체 생산 합작법인(pCAM JV)의 설립을 취소했고,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 2023년 포드와의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백지화했다.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전기차 시장의 둔화가 기업들의 예상보다 장기화하는 데 따른 현상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셀 3사의 지난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8.4%로 2023년 23.1%에서 10%대로 추락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한 2020∼2021년 30%대에서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국내 셀 회사들에 삼원계 배터리용 소재를 공급하는 회사들의 실적도 덩달아 악화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등 해외우려기업(FEOC)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우후죽순 늘어났던 한중 합작법인의 사업 계획엔 먹구름이 낀다. 인천연구원에 따르면 거린메이, 롱바이, 화유코발트, CNGR 등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2023년에만 한·중 합작법인을 통해 약 5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리튬, 니켈 등 원료부터 양·음극재에 이르는 배터리 ‘풀 밸류체인’을 갖추려는 전략에서 제한된 자원을 사업성이 유망한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니켈 정제 합작공장 철회에 대해 “광양, 인도네시아 등 기존에 투자한 니켈 사업을 안정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향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추가 사업 계획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IRA를 어떻게 손질하느냐에 따라 중국과의 합작법인은 사업성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맺은 계약을 변경하거나 해지할 수 있도록 합작법인 협상 단계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