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슬픔’ 마주한 자살유족…“자조모임 통해 일상 회복할 수 있어”

입력 2025-02-12 05:00 수정 2025-02-12 05:00
한국자살유족협회 관계자들이 지난 10일 일본 도쿄 전국자살유족종합지원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현지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일본 도쿄 이다바시역에서 도보로 10여분 떨어진 꼬마 빌딩 5층에서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작은 사무실 문틈으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인 인사말이 들렸다. 한국자살유족협회(회장 강명수)와 일본 전국자살유족종합지원센터(전국센터·대표 시미즈 야스유키)가 만났다.

두 단체는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보듬고 고립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캄캄하고 긴 터널을 지나 세상으로 나온 유족들에게 국적과 언어, 문화의 차이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자살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로 떠올랐다. 시미즈 야스유키 라이프링크 대표는 2004년 단체를 설립하고 전국의 자살유족과 민관협력을 통해 2006년 ‘자살 대책 기본법’ 제정을 끌어냈다. 법 제정 후 3년만에 일본의 자살률은 30% 이상 감소했다.

전국센터는 자살로 인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은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자살유족이 겪는 심리적·사회적 어려움을 완화하고 일상으로의 회복을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단체는 자살예방기본법과 자살예방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운영되며, 자살 예방보다는 유족 돌봄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자살 사망자 1명당 5~10명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6만~13만 명의 자살유족이 발생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자살 고위험군의 전체 규모는 국내 인구의 10%가량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혈연을 제외한 친구, 직장 동료 등 주변 지인까지 범위를 넓히면 한국인 4명 중 1명이 자살 사별을 경험하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경험하는 등 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유족의 우울증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7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자살사별자가 적절한 심리지원을 받는 규모는 약 12%에 불과하다.

마츠카와 아키코 전국자살유족종합지원센터 이사는 민간 주도의 자조 모임과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국센터는 ‘와카치아이노 카이’라고 불리는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임은 유족들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고립감을 해소하고 심리적 치유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필요에 따라 정신건강·법률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과 연결해 유족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츠카와 이사는 “유족 당사자가 자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족들은 자신의 아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길 꺼리지만 모임을 통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위로를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만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임에 참여하면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회복할 수 있다”면서 “실제로 자조 모임을 통해 잠겨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유족과 깊은 연대를 맺음으로써 일상을 되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18일 한국자살유족협회는 자살유족이 주체로서 사회적 인식 개선과 법 개정, 자살 예방 활동 등을 펼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했다. 자살유족 단체 ‘미안하다고맙다사랑한다(미고사)’ ‘자작나무’, 자살 예방 단체 ‘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생명의전화’ 등 14개 단체의 연합체다. 앞서 지난해에는 자살유족지원 법률 개정과 함께 자살유족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도쿄=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