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감정과 추억이 담긴 특별한 존재다. 어린아이에게는 친구이자 위로가 되고 성인에게는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따뜻한 선물이자 창작과 예술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감정을 전하는 헝겊 인형을 제작해 취약계층의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공동체가 있다. 바로 ‘인사동(인형을 사랑하는 동아리)’이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4층 건물. 2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랑스러운 헝겊 인형들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전시된 인형들은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과 아기자기한 옷차림으로 개성을 뽐낸다. 같은 인형은 하나도 없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마음에 드는 인형을 골라서 엉덩이를 토닥여 보세요.”
한참 인형을 둘러보던 기자에게 재단법인 ‘담’ 손성희(58) 이사가 다가와 말했다. 기자는 체크무늬 옷에 멋진 파란색 니트를 입은 인형을 손에 들었다. 마치 갓난아이를 다독이듯 조심스럽게 인형을 들어 안아 엉덩이를 토닥였다.
“인형이 오히려 저를 안아주는 것 같아요.”
기자의 말에 작업 중이던 봉사자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헝겊인형이 주는 감정을 제대로 느꼈군요’라는 따뜻한 공감이 묻어났다.
손 이사장은 “박사 과정에서 재활 심리 미술 치료를 전공한 후 미혼모 쉼터에서 봉사하며 그들이 만드는 인형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쉼터가 문을 닫은 뒤, 운영하던 카페에서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재료비를 마련하며 인형 만들기를 시작한 것이 ‘인사동’ 동아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횟수로 11년째. 봉사자들은 매주 목요일 이곳에 모여 독일 발도르프 인형을 모티브로 한 수제 헝겊 인형을 만든다. 발도르프 인형은 20세기 초 루돌프 슈타이너의 교육 철학에서 시작됐다. 포근한 헝겊 인형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놀잇감이자 감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인형의 표정을 단순하게 만들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감정을 투영해 공감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발도르프 인형은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아이들을 위해 독일산 천연 섬유와 자연 소재만을 사용해 안전성을 높였다. 최근에는 발도르프 인형을 발전시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인형들도 만들고 있다.
‘인사동’에는 50~60대 집사와 권사 등 8명이 봉사자로 활동한다. 1년에서 11년까지 제작 숙련 경력은 다양하지만 애정은 한결같다. 비록 나이가 들어 돋보기를 써야 하지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다. 인형 제작에 대한 깊은 애정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장인들이다.
조명민 봉사자는 “인형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업에 집중하게 돼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들도 사라진다”며 “오히려 내가 먼저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봉사자들은 돋보기를 써야 하지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인형을 만든다. 머리는 헤어디자이너처럼, 볼 터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옷은 패션디자이너처럼 섬세하게 손길을 더한다. 이렇게 완성된 인형은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작품이 되어,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의 소중한 친구가 될 준비를 마친다.
김도숙(56) 팀장은 “우리가 만드는 인형은 만드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인형의 모습이 표현되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높다”면서 “인형을 전달하러 갔을때 아이들이 뛰어나오는 모습 기억은 따뜻하게 기억된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형 하나하나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여 년간 ‘인사동’ 공동체에서 완성된 1200여개의 인형은 보육원과 취약계층 아이들,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외 아이들에게 무료로 입양됐다. ‘입양’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인형이 장난감을 넘어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위로를 주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회원들은 말한다. 단순한 기부를 넘어 인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과 사랑이 닿을 수 있도록 손 이사장이 직접 정성껏 전달한다.
손 이사장은 여러 대기업과 유명 아동복 업체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봉사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인형이 정말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작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공동체는 앞으로도 인형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할 계획이다. 헝겊 인형이 필요한 단체는 신청 후 검증을 거쳐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손 이사장은 “아이들이 인형을 꼭 안고 잠들거나 놀이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작은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도 인형을 통해 누군가의 응원과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