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신성’ 이나현(한국체대)의 등장으로 미래를 밝혔다.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동계AG)에 출전한 이나현은 전 종목 메달 획득에 성공하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이상화(은퇴)와 김민선(의정부시청)의 뒤를 이을 차세대 ‘빙속 여제’ 후보로도 급부상했다.
이나현은 11일(한국시간)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스피드 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경기에서 동메달(1분16초39)을 추가했다. 이로써 이나현은 이번 대회 자신이 출전한 100m와 팀 스프린트(이상 금메달), 500m(은메달), 1000m에서 모두 입상에 성공, 4개의 메달을 수집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는 이번 대회 전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한 한국 선수단의 첫 번째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나현은 평소 활동적인 성격으로 어린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접한 빙상 수업을 통해 스케이팅에 흥미를 느꼈다. 처음엔 취미로 주 1~2회 레슨을 받으며 스케이트를 탔다. “정말 재미있다. 빨리 잘 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스케이트화를 신고 운동에 나선 그는 무릎이 아파 한동안 쉬기도 했다. 스케이트의 매력에 푹 빠졌던 이나현은 운동을 쉬면서 시간이 많아졌지만 허전함을 많이 느꼈다. 스케이터로 진로를 확정한 뒤로는 체대 진학을 목표로 잡았다. 훈련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재활과 컨디셔닝 등 몸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며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나현의 어머니 이승연씨는 이날 국민일보에 “좋아하는 일과 관심 없는 것이 확실한 편인 아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이 생기면 엄청나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며 “부상으로 조금 힘들어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들 조금씩 다 아픈데 참고 한다’고 다독이곤 했다”고 전했다.
고교 시절이던 지난해 1월 이나현은 2023-202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5차 대회 500m에서 37초34의 기록으로 주니어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한국 여자 선수가 500m에서 주니어 세계기록을 세운 건 이상화(2007년), 김민선(2017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였다.
이나현은 생애 처음 동계AG에 출전했다. 갓 시니어 무대로 올라선 그는 국제종합대회에서 경험을 쌓는다는 목표로 임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대회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씨는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딸이 국제 무대에 서 있는 게 꿈만 같다.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응원했다”고 말했다.
이나현은 이번 대회를 넘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딸에게 스케이터가 네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늘 얘기한다. 스케이트로 조금씩 충만해져가는 인생을 즐기길 바란다”며 “꿈꾸던 올림픽 무대를 위해 한 번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2005년생인 이나현은 171㎝의 우월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한 힘 있는 스케이팅이 강점이다. 향후 국제대회 경험과 기술을 더 쌓는다면 더욱 위협적인 선수로 성장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