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으로 하시면 10% 할인해 드려요.’ 결혼부터 출산·육아까지의 여정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데 할인을 받아도 비싼 비용에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국세청에 따르면 등골을 빼먹는 수준의 현금을 수취한 이들은 탈세까지 해가며 호화생활을 누린다.
예비부부들이 선호하는 A스튜디오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단계마다 가격이 확 오른다. 사진 촬영 후 액자비, 장당 추가비 등 현장 추가금은 현금으로만 받는다. 이 돈은 사주의 사촌 형이나 배우자, 자녀 명의의 계좌로 들어간 뒤 매출액에서 사라진다. 사주는 이 돈으로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주식을 취득했다.
출산을 앞둔 부부는 또 다른 ‘현금 장사’를 만난다. 임신 초기 예약이 필수인 B산후조리원은 상담과 함께 현금 할인가 안내를 한다. 기본 옵션 외 추가 마사지 패키지를 이용하게 한 뒤 요금을 전액 현금으로 받는 식이다. 이 돈은 B조리원 매출이 아니라 사주의 쌈짓돈이 된다. B조리원은 사주 일가가 소유한 건물에 세 들어 있으면서 시세의 2배 임대료를 지불한다. 그만큼 B조리원이 쓰는 비용은 많아져 내야 할 세금이 줄지만, 사실 사주일가 내에서 돌고 도는 돈이다. 이곳 사주는 법인카드로 백화점 명품관에서 고가 제품을 샀다.
아이가 좀 크면 이번엔 영어유치원 부담이 생긴다. 서울 강남의 C영어유치원는 비싼 원비를 내겠다는 학부모가 줄을 선다. 수강료는 카드 결제가 되지만 레벨테스트 비용, 교재비, 재료비, 방과 후 학습비 등 부수비용은 현금만 받는다. 세정 당국의 눈을 피한 이 돈은 사주 자녀의 해외 유학자금으로 쓰였다. 사주는 또 배우자 사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매출을 빼돌렸다. 이들과 자녀가 타는 수입차 여러 대는 모두 법인 명의다.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런 상황에 국세청이 칼을 빼 들었다. 국세청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산후조리원, 영어유치원 등 3개 분야 46곳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나선다고 11일 밝혔다. 스드메 24곳과 산후조리원 12곳, 영어유치원 10곳이다. 2019~2023년 5년치 기록을 탈탈 털 예정이다. 조세범칙행위가 적발되면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게 하고 현금영수증 미발행 사례에는 가산세(미발급 금액의 20%)를 철저히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대상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관련인의 재산 형성 과정까지 세세히 검증하는 등 강도 높게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