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했다. 한국 등 동맹에 대한 예외 조치도 없이 전세계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관세 폭격을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 무역 상대국과 관세율을 맞추는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 등도 줄줄이 예고돼 있어 관세 전쟁이 전 세계로 확전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 등에 예외 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단순화한다”며 “예외나 면제 없이 25%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서명한 포고문에 따르면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는 다음달 12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트럼프는 “이는 미국에서 많은 업체들이 개업하게 됨을 의미한다”며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미국을 다시 부유하고 만드는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상대국의 보복 조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완화했던 캐나다 멕시코 일본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해 예외 없는 글로벌 관세 부과를 재개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의 철강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알루미늄 제품에 10% 관세를 각각 부과했다. 하지만 한국 등 파트너 국가와는 협상을 통해 예외를 허용했는데, 이번에 이런 예외와 면제를 없앤 것이다. 또 알루미늄 관세도 기존 10%에서 25%로 인상했다. 한국은 현재 쿼터제를 통해 263만t의 철강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받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날 예외나 면제가 없다고 밝힌 만큼, 다음달 관세 발효 시점부터 해당 철강에도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주요 (철강) 공급국인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에 대한 면세 및 관세 면제 쿼터를 취소함으로써 다자간 무역 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번 전면적 관세 부과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USMCA)을 맺은 두 나라는 트럼프가 모든 수입품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 직전, 정상 간 협상을 통해 한달 간 유예에 합의했다. 하지만 철강의 경우에는 이런 유예조차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철강 등 원자재에 대한 관세는 다른 제조업 등에 연쇄적인 가격 인상을 일으키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선임고문은 이번 관세 조치에 대해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2.0은 외국 덤핑을 종식시키고, 국내 생산을 촉진하며, 미국의 경제와 국가 안보의 중추이자 기둥인 철강 및 알루미늄 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 관세가 발효되는 다음달 12일까지 시간이 남아있지만 면제나 예외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가 캐나다, 멕시코 등에 관세 부과를 선언한 뒤 협상으르 통해 유예하는 방식이 이번에는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다. WSJ는 “트럼프와 그의 경제팀은 해외 정부, 특히 중국이 자국의 철강 회사에 제공하는 보조금 때문에 글로벌 철강 무역이 불공평하다고 말해왔다”며 “철강 관세는 외국 정부가 쉽게 협상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관세 부과가 미국산 철강의 가격 경쟁력을 위해 해외 철강 제품을 더 비싸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은 앞으로 더 확전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날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도 트럼프의 관세 폭격 사정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는 또 ‘상호 관세’도 곧 발표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관세 대상국으로 언급한 국가는 유럽연합(EU)와 대만 등이다. 다만 상호 관세가 이날 발표된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에 추가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