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미국을 맹비난한 성명을 연이어 낸 것은 추후 협상 국면을 대비한 포석 깔기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위협에 대한 자강론 명분을 쌓고, 핵과 미사일 기술의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77주년 건군절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이 동북아에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전략 수단들과 실전 수준에서 벌어지는 미국 주도의 쌍무 및 다자적인 핵전쟁 모의 연습들, 미국의 지역 군사 블록 각본에 따라 구축된 미·일·한 3자 군사 동맹체제와 그를 기축으로 하는 아시아판 ‘나토’의 형성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새로운 격돌 구도를 만드는 근본 요인이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했던 확장억제 자산 전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을 동북아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한 셈이다. 북한은 핵협의그룹(NCG) 도상훈련(TTX),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 계기가 된 다영역 연합 훈련 ‘프리덤에지’ 게시 등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북·미 대화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인데, 아직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을 것”이라며 “협상이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핵무력 강화를 위한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본심을 파악하기까지는 대화 시그널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과의 협상 의제에 군축 등 문제를 담기까지 핵과 무기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도 표출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북한의 ‘배짱’ 반응도 당분간 지속할 수 있다고 봤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 추가 파병 등의 대가로 군사 기술을 지원받아 대미 협상 국면에서 ‘몸값’을 올릴 여지가 더 남았다는 것이다.
앞서 NHK는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협력을 받아 무인기(드론)를 공동 개발, 올해부터 양산에 들어갈 전망이라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은 러시아의 기술지원을 통해 여러 기종의 드론을 러시아와 공동으로 개발 생산하는데 이미 합의했다.
임 교수는 “결국 북·미 간 이와 관련한 물밑 접촉이 있을 텐데 시점은 러·우 전쟁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