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한 여인 이야기는 기독교인이라면 많이 읽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설교하는 목사로서 고백하자면 그 이야기가 도무지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여자에게 5명의 남편이 있을 수 있으며 거기다가 지금 동거하는 남자도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주석 책도 살펴보고 선배 목사님들의 해석도 찾아보면서 설교를 해왔습니다.
섬에 오기 전에는 수가성 여인 경우는 특별히 고대의 먼 이스라엘 변두리에 있었던 작은 이야기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섬 목회를 하면서 다방에서 일하다가 섬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섬에 살아 보니 과거 직업여성들이 어부 노총각들의 아내가 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뒤틀리면 언제든 가정도, 자녀도 내팽개치고 떠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소름 돋을 정도로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꼈습니다. 섬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도 그렇습니다. 드러나지만 않을 뿐 목회자의 사역 영역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생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적한 6명의 남편을 경험한 그 숫자도 너무나 정확했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 데도 모르고 살았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갈릴리 어부들처럼 그런 여인을 그저 배척하고 모른 척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어부 출신 제자들을 뒤로하고 친히 여인을 찾아가 만나시고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어떻게 전도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섬 목회를 해보니 이곳 사람들은 타인의 약점을 감싸주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국에서 21년간 이민 목회를 했고 섬에는 아무 연고가 없습니다. 그런데 40년 전에 그 여성들이 정착해 사는 데도 모종의 시비가 벌어지면 온 동네가 다 아는, 한 여성의 흘러간 과거를 들추어내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폭로하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폭로에는 그 내용을 더 부풀려 모함하면서 이웃을 음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런 모습이 그 옛날 사마리아에도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 장면은 잠자는 우리들의 전도 방식을 확 깨뜨려 버립니다.
우리 섬에 어느 여성 분은 결혼해서 가는 곳마다 아이를 한 명씩 낳고 그렇게 다섯 번 결혼하신 분도 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우물가 여성과 판박이로 생활을 합니다. 그 원인이야 많겠지만 문제는 유흥업에서 생활하던 그 습성을 복음 없이 인간의 의지로 이겨 보려고 몸부림치기에 그 결과는 수없이 많은 상처로 얼룩진다는 것입니다. 낙도에는 이런 기막힌 사연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이런 섬에 저를 목회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와 목회, 선교를 명하십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알려주십시오. 남편 다섯을 가진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이분들에게 어떤 설교를 할 것이며, 어떤 성경 본문을 인용해야 여자도 남자도 한자리에서 소주 5병을 들이마시는 저 공허함을 달랠 수 있을까요. 저분들은 만족함을 모르고 그저 펑펑 울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는 6남매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간 한 가정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저는 처음 섬에 올 때 베드로처럼 한 성질 하는 어부들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보니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이 이곳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이들의 목마름을 해결할 능력은 저에게 없다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번 주일예배에도 술을 잔뜩 마신 어부 노총각을 앉혀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내일은 힘을 내어 ‘수가성 우물가’로 가려고 합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