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교회 위한 도구일 뿐…신앙 대상 아냐”

입력 2025-02-09 09:54 수정 2025-02-09 11:48
정일웅 전 총신대 총장이 8일 경기도 신나는교회에서 열린 506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 제공

츠빙글리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아 개혁신학의 본질을 다시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8일 경기도 신나는교회(이정기 목사)에서 열린 제506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회장 주도홍 교수)는 개혁신학의 방향성을 논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조 강연자로 나선 정일웅 전 총신대 총장은 “개혁주의 신학을 신앙의 대상처럼 여기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정 전 총장은 “우리가 믿는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고 성경”이라며 “그런데 개혁주의를 마치 절대적 신앙처럼 강조하면 주객이 전도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장은 개혁신학이 본래 ‘교회를 돕는 도구’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을 교리적 이념으로 삼고 그것을 절대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태도는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이 오히려 성경보다 앞서는 모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개혁주의’가 아니라 ‘개혁신학’”이라며 “성경과 신앙을 깊이 연구하는 신학적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학술대회에서는 개혁신학의 바른 방향을 모색하며 츠빙글리와 칼빈의 개혁사상을 비교하는 발표들이 이어졌다. 주도홍 회장은 “츠빙글리의 신학은 칼빈 이전에 존재한 개혁신학의 근간”이라며 “한국교회는 칼빈만 강조하지만 츠빙글리를 연구해야 개혁신학의 원래 모습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은선 백석대 교수는 ‘츠빙글리의 원죄 사상과 언약 사상의 발전 과정’을 발표하며 “츠빙글리의 언약 사상이 칼빈에게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이신열 고신대 교수는 ‘츠빙글리와 칼빈의 창조론’을 비교하며 “두 신학자는 공통점도 많지만 신학적 차이도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같은 시대의 종교개혁자였지만 개혁 방향과 신학적 입장에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성찬론이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찬의 떡과 포도주 안에 실재하는 방식으로 함께한다고 믿었고(공재설), 츠빙글리는 성찬을 단순한 상징으로 해석했다(영적임재설). 이 때문에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두 사람은 논쟁했으나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이밖에 루터는 교회의 개혁을 주로 신앙과 신학적 측면에서 접근했지만 츠빙글리는 사회와 정치까지 포함하는 전면적 개혁을 추진했다. 루터파가 독일 내에서 강력한 교회 조직을 형성했지만 츠빙글리파는 스위스 각 지역으로 흩어져 개혁을 진행했다. 결국, 츠빙글리는 1531년 카펠 전투에서 가톨릭 군대와의 충돌로 전사하며 개혁운동이 칼빈에게로 이어졌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학자들은 개혁신학의 올바른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참석자들은 “개혁주의라는 단어가 신앙처럼 사용되는 것이 문제”라며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개혁신학이지 개혁주의라는 이념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정 전 총장은 “개혁신학은 연구와 논의를 거쳐 계속 발전해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개혁신학을 올바로 이해할 때 신앙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개회 예배에서는 이정기 신나는교회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경동교회(임영섭 목사) 백석대학교회(곽인섭 목사) 대구동신교회(문대원 목사) 등은 후원으로 참여했다.

506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 참가자들이 8일 경기도 신나는교회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 제공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