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자 장악’ 후폭풍…백악관 “군대 안 보내” 진화에도 파문 확산

입력 2025-02-06 07:5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할 것”이라고 밝힌 뒤 전 세계에서 파문이 일자 백악관과 국무부 등이 수위 조절에 나섰다. 트럼프의 발언을 관대하고 새로운 ‘인도주의적 조치’로 옹호하면서, 미군 파병 여부 등 논란이 되는 이슈는 피해 가는 방식이다. 팔레스타인과 유엔 등 국제 사회의 비판이 이어진 가운데, 미국 국내에서도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와 동떨어진 분쟁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마코 루비오 장관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에 대해 “그것은 적대적인 조치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매우 관대한 조치이자 제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자 지구를) 재건하고 재건 책임을 맡겠다는 제안”이라며 “불발탄과 잔해 때문에 현재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은 사람들이 다시 와 살 수 있도록 미국이 개입해 잔해를 치우고 파괴된 것과 불발탄을 치우겠다는 미국의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가 가자지구에 대한 소유권을 무기한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가자지구 재건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임시 이주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곳은 철거 현장 같으며 수돗물도 없다”며 “ 트럼프 대통령은 그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그는 대담한 새 계획을 통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 미군을 투입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은 트럼프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가자지구 지상에 군대를 투입한다는 것도, 미국의 세금을 쓰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며 “그것은 지구상 최고의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역내 파트너들과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도 이날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미군을 배치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미국 달러를 지출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전날 가자지구에 미군을 파병하겠느냐에 질문에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며 군 투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가자지구 장악과 개발은 미군과 미국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백악관 등이 “세금을 쓰지 않는다”고 해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트럼프의 제안 중 가장 충격적인 요소들을 일부 철회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팸 본디 법무장관 취임 선서에서 가자지구 구상에 대해 질문받자 “모두가 그것을 사랑한다”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또 “지금은 (답변하기)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구상 자체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마이크 왈츠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오전 트럼프의 구상에 대해 “대담하고 신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건된 가자지구에 누가 살게 되느냐는 질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마도 많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관련 행사 개막 연설에서 “국제법의 근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형태의 인종청소도 방지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구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한 것으로 풀이된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도 이날 “우리는 가자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가자지구를 포함해 조상의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반발이 쏟아졌다. 민주당 소속 팀 케인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구상에 대해 “그것은 기이한 환상”이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은 하원 본회의에서 “인종청소는 반인륜적”이라며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발의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가자지구 발언이 일론 머스크의 국제개발처(USAID) 해체 시도 등 국내의 논쟁적 현안에 대한 비판을 돌리려는 시도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우리는 가자지구를 점령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언론은 며칠간 이문제에 집중할 것이고, 트럼프는 대중의 관심이 억만장자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대중을 착취하는 실제 이야기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