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하원, ‘대통령 암살 협박’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

입력 2025-02-05 18:39
필리핀 하원. AP연합뉴스

필리핀 하원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갈등을 이어온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탄핵 위기에 직면했다.

AP통신, BBC 등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필리핀 하원은 의원 306명 중 215명이 수백만 달러의 공금을 횡령하고 마르코스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위협한 혐의 등을 받는 두테르테 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레지날드 벨라스코 하원 사무총장은 “215명의 의원이 두테르테 대통령 탄핵 청원서에 서명했다”며 “하원이 부통령을 탄핵하기에 충분한 숫자”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대통령·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선 하원에서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어 탄핵재판은 상원에서 이뤄지며 정원(24명)의 3분의 2 이상이 탄핵에 찬성하면 두테르테 부통령은 파면된다. 이 경우 필리핀 역사상 탄핵된 최초의 부통령이 된다. 또 2028년 대선을 비롯해 영구적으로 공직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BBC는 “이번 충격적인 탄핵은 수개월간 국가를 긴장 상태로 유지해 온 마르코스와 두테르테의 격렬한 불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앞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시 이를 두고 필리핀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두테르테 가문과 마르코스 가문의 정치적 동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대선에서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부통령 각각 58.77%, 61.5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 양측의 불화는 거세졌다. 친중 행보를 보였던 로드리고 두테르테와 달리 마르코스 대통령은 친미 행보를 이어갔다. 두테르테 부통령은 지난해 11월 자신을 겨냥한 암살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암살되면 마르코스 대통령과 가족 등을 죽이라고 경호원에게 지시했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올해 국가안보회의(NSC)에서조차 배제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도 탄핵에 대해선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지만 하원은 결국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ABS-CBN 뉴스에 따르면 두테르테 부통령의 오빠인 파올로 두테르테 하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정치적 동기에 의해 탄핵을 강행하려는 절박하고도 악랄한 노력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무분별한 권력 남용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