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충돌 중인 가자지구에 대해 “미국이 장악할 것(take over)”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영토로 국제사회의 최대 화약고인 가자지구를 장악하기 위해 미군 파병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가가 반발하고 국제 사회의 오랜 평화 구상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가자지구를 소유할 것이며 현장의 모든 위험한 불발탄과 다른 무기의 해체를 책임지고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파괴된 건물을 철거하고,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주거를 무한정으로 공급하는 경제 발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 장악을 위해 미군을 배치할 것인지 묻는 말에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다. 우리가 장악하고 개발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가자지구가 개발된 뒤 누가 살게 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세계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자지구의 잠재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가자지구를 개발하면 ‘중동의 리비에라(아름다운 해안 휴양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미국이 무슨 근거로 가자지구를 장악할지를 두고 반론이 쏟아져나왔다. 국제사회에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은 팔레스타인의 영토로 인정받는다.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확대해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을 강제로 추방하는 것도 제네바협약 등을 위반하는 조치다.
또 유엔 등 국제사회는 수십 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지지해왔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장악’은 두 국가 해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국제사회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회견 직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것이며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서 “팔레스타인은 팔 수 없다”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두 국가든, 한 국가든, 어떤 다른 국가든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며 “이는 삶을 살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영구점령을 의미하는 것인지 묻는 말에 “장기적인 (가자지구)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동 지역 전체에 큰 안정감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해본 모든 사람이 미국이 그 땅을 소유하고 개발해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곧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등 중동을 방문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중동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며 “나쁜 지도자들이 이런 일(전쟁)이 일어나게 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은 이 문제를 인도주의적 의무이자 경제 발전의 기회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중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정학적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열었다”며 “트럼프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정착이 자신이 경력을 쌓은 뉴욕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와 유사할 것이라고 시사했다”라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도 “트럼프가 가자 공격을 지휘한 지도자(네타냐후) 옆에서 부동산 개발업자처럼 말했다”며 “트럼프가 파나마 운하나 그린란드의 지배권을 미국이 얻는 것에 대해 표명했던 것과 비슷한 야망이 반영돼 있지만, 수세기 동안의 혼란의 근원이 돼 온 땅의 지배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훨씬 더 폭발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이날 기자회견과 앞서 백악관 질의응답에서도 전쟁 해결을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지구를 떠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가자지구는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떻게 머무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그곳은 철거 현장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적절한 땅이나 여러 개의 땅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지역에 많은 돈을 투자해서 정말 훌륭한 장소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방법”이라며 “가자지구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트럼프의 기자회견 전 성명에서도 “가자지구의 우리 주민들은 이런 계획이 실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한 것은 우리 주민에 대한 점령과 침략의 종식이지, 그들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난달 19일부터 교전을 멈추고 생존 인질 33명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1904명을 교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6주간의 휴전 1단계에 들어갔다. 2단계에서는 인질 송환과 이스라엘군 완전철수, 3단계에서는 영구 휴전과 가자 지구 재건 등을 논의한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