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대만처럼…‘반미’ 타고 加 진보 부활하나

입력 2025-02-03 18:47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5% 관세 부과 조치 강행에 캐나다 민심이 ‘반미·반트럼프’ 정서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캐나다인 사이에서 애국심이 부각되면서 올해 예정된 총선에서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보수당은 ‘친트럼프’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 집권 자유당도 ‘애국심’을 강조하며 연일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나섰다.

2일(현지시간) 캐나다 일간 글로브앤메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 이후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미국산 제품 불매,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 취소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식료품점에서 캐나다산을 선택하고 휴가도 국내에서 보내자. 캐나다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뭉쳐 달라”며 애국심에 호소했다. 이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호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상엔 미국 제품에 대한 대체 품목이 공유되고 있고 2018년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 때 만들어진 ‘메이드 인 캐나다’ 사이트는 지난달 트래픽이 15배 증가했다. 스라바나 다스굽타 사이먼 프레이저대 교수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가) 소비자 심리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레딧 캡처

낮은 지지율로 인해 지난달 사퇴를 선언한 트뤼도 총리도 직접적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북미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레딧에선 수년간 캐나다 내 밈(Meme·유행 콘텐츠)이었던 ‘FUCK 트뤼도’를 ‘FUCK 트럼프’로 대체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례적으로 캐나다 내 반미 감정이 고조되면서 올해 10월 이전 열릴 예정인 캐나다 총선의 향방도 주목받고 있다. 캐나다 여론조사 통계 사이트인 338캐나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보수당은 4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자유당은 24%로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의석 예측치로 따져보면 양당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보수당은 220석에 달하는 반면 자유당은 63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을 전후로 추세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자유당은 저조한 지지율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트뤼도 총리가 물러나며 차기 당 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신임 대표가 임명될 경우 ‘컨벤션 효과’를 기대할 만한 상황인 셈이다. 또한 신임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 총재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전 재무부 장관 등은 트럼프와 각을 세우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피에르 폴리에브 보수당 대표는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지지를 받는 등 ‘친트럼프’ 이미지가 강하다. 그는 지난달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대한 대응책으로 에너지 수출 중단이 거론되자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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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의 사퇴와 트럼프의 위협 등이 이어지며 자유당은 여론조사에서 반등하고 있다. 특히 자유당이 보수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캐나다 여론조사 업체 에코스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조사에서 보수당은 35.7%, 자유당은 32.7%를 기록했다. 오차범위(±3.1%)를 고려하면 보수당이 우위를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에코스는 “트뤼도 사퇴 선언 이후 격차는 좁아지기 시작했다”며 “특히 트럼프의 관세 부과 발표, 캐나다 합병 위협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주요 여론조사 기관 중 한 곳인 앵거스 리드도 지난달 27일 “자유당 대표 경선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카니 전 총재가 대표가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권자들 사이에서 당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며 트뤼도 사퇴 당시 16%였던 자유당 지지율이 카니로 대표가 바뀌면 29%까지 상승한다고 밝혔다.

2020년 대만 총통선거 이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당선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대만인들이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뜻에서 다섯 손가락을 펼쳐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애국심이 선거를 뒤집은 경우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다. 차이잉원 총통은 대선을 불과 1년여 앞둔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의 텃밭인 가오슝시를 내줄 정도로 대패했다. 이후에도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며 재선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차이 총통은 중국이란 외부적 요인을 통해 판세를 뒤집었다. 2019년 6월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하자 대만 내에선 반중 감정이 거세게 불었다. 중국이 대만에 압박해온 ‘일국양제’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중국이 대만을 군사·경제 등 전 방위적으로 압박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차이 총통은 이를 활용해 “대만의 자유 주권을 지키자”며 애국심을 고조했고 대선에서 약 20%포인트 차 압승을 거뒀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