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신장, 두 배의 사랑

입력 2025-02-03 13:39 수정 2025-02-03 13:46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엄해숙(72)씨와 그의 아들 윤현중(55)씨가 지난해 7월 경기도 구리 엄씨의 보험사무실 근처 놀이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반쪽이라서 더 행복합니다.”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엄해숙(72)씨와 그의 아들 윤현중(55)씨가 함께 입을 모았다. 2003년, 엄씨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남성을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선뜻 내주었다. 그리고 8년 뒤, 그의 아들 윤씨도 같은 길을 걸었다. 어머니를 보며 장기 기증을 결심한 그는 8년간 만성 신부전으로 투병하던 30대 남성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자신의 몸 일부를 나누면서도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자의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장기 기증 홍보 활동과 이웃을 위한 봉사에 앞장서며 지속해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는 지난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단체 사무실에서 엄씨 모자의 후원금 전달식을 열었다고 3일 밝혔다. 이날 엄 씨는 장기부전 환자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후원금 100만 원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전달했다.

본부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와 엄해숙씨가 지난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단체 사무실에서 후원금 전달식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엄씨는 50여 년 전부터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생계를 책임졌다. 화장품 판매부터 보험 설계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는 바쁜 와중에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늘 앞장섰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독려해왔다. 그가 장기기증을 안내해 등록한 사람만 208명에 달한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이웃을 돕고자 헌혈을 꾸준히 해온 아들 윤씨는 “막연히 사후 장기기증을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신장을 기증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지금 생명을 나눠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엄씨는 장기기증 이후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1994년부터 구리시 강원도민회 소속으로 독거노인 돌봄을 시작해, 연탄 나눔과 주거환경 개선 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대한적십자사 박애장 금장을, 2024년 GKL 사회공헌상 희망나눔상을 수상했다.

새해를 맞아 후원금 전달로 또 한 번 나눔을 실천한 엄씨는 “설 연휴에도 병상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장기부전 환자들에게 따뜻한 정을 전하고 싶다”며 “작은 금액이지만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