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외도가 ‘합법화’된 것은 아니다

입력 2025-02-02 17:58

이제 갓 마흔 살을 넘긴 사내가 법원으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다. 법원에 연루될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봉투를 뜯었더니 소장이 들어있다. 그동안 사내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온 여자친구의 남편이 사내를 상대로 소위 ‘상간남’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사내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신혼 초에 불화로 이혼하고 줄곧 혼자 살다가 우연히 마음이 맞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었는데, 유부녀라니. 게다가 여자친구는 빼고 사내만을 상대로 한 상간남 소송까지.

사내는 이혼하고 생계를 위해 보험모집인이 된 여자친구에게 보험을 들면서 가까워졌다. 여자친구는 5년 전에 이혼했고, 두 아이는 전 남편이 키우고 있다고 했다. 사내와 여자친구는 여느 연인들처럼 밤늦게까지 데이트를 즐기고 함께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 그러나 유부녀라면 남편이나 아이들로부터 전화라도 오기 마련인데, 어떤 연락도 없어서 당연히 이혼녀로 알았다.

사내는 여자친구에게 전화해서 남편으로부터 상간남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렸다. 여자친구는 남편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원 중이라 했다. 거듭 미안하다고 하면서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말한다. 사내는 여자친구에게 상간남 소송법정에서 저간의 사정을 증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여자친구가 말한다. 그냥 돈 주고 끝내면 안 되냐고.

간통죄는 1953년 제정되어 62년간 유지되다가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하면서 즉시 폐지되었다. 재판관 5명은 간통 및 상간 행위를 처벌하는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냈고, 1명은 성적 성실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간통행위자 등까지 처벌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과잉행사로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나머지 1명은 죄질이 서로 다른 간통행위에 일률적으로 징역형만 부과하도록 규정한 것이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냈다.

이 결정으로 인해 결혼 관계에서의 외도는 더 이상 형사적으로 처벌되지 않게 되었다. 당시 간통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9명이 석방되고 수사 중이던 598명이 혐의없음 처분을 받는 등 간통죄에 연루된 1770명이 형사처벌을 면했다. 많은 사람이 간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간통이 ‘합법화’된 것은 아니다. 단지 ‘비범죄화’되었을 뿐이다. 형사처벌은 면하게 되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책임과 도덕적 비난은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내는 전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 수천만원의 돈을 썼는데, 상간남 소송에서 또 수천만원을 빼앗길 수 없고, 무엇보다 상간남이라는 불명예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전 여자친구와 나눈 문자 내용을 꼼꼼히 복원했다. 다행히 전 여자친구가 사내에게 보낸 문자 중에 ‘함께 잘 살아보자’는 내용이 있어서 법원에 제출했더니, 전 여자친구의 남편이 상간남 소송을 취하했다. 사내는 가까스로 상간남의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