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MBC 기상 캐스터 고(故) 오요안나가 생전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생전 고인을 인신공격하고 조리돌림하는 정황이 담긴 동료들의 ‘왕따 단체 채팅방’ 내용이 공개됐다. MBC가 오요안나 사건의 진상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여당 의원들은 오요안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JTBC에서 공개한 단체 채팅방 캡처를 보면 오요안나를 향한 인신공격이 가득하다. 오요안나와 동기를 제외한 기상 캐스터 4명이 만든 이 채팅방에서는 오요안나를 향해 “완전 미친X이다” “몸에서 냄새 난다” “XX도 가지가지” “또X이가 상대해줬더니 대든다” “연진(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기상 캐스터 역할로 등장하는 악역)이는 방송이라도 잘했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겁나 한다,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다” 등 온갖 험담을 했다.
오요안나 유족은 이들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유족은 소장에서 “오요안나가 입사한 2021년 10월부터 사망 직전까지 동료들의 빈번한 비난과 폭언 등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라고 주장했다. MBC 제3 노조가 공개한, 오요안나의 유서로 보이는 문건에 따르면 한 동료는 “실력과 태도에 문제가 있어 MBC 보도국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라고 비난하고 퇴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 괴롭혔다.
책임자 MBC는 책임 회피만… 여권 “정부 나서라”
이런 사태를 방치한 MBC는 오요안나의 극단 선택 이면에 직장 내 괴롭힘이 있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뒤 ‘MBC 흔들기를 멈추라’라는 취지로 대응에 나서 물의를 빚었다. MBC는 지난달 28일 낸 입장문을 통해 “고인 관련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대응하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오요안나가 자신의 고충을 인사팀 감사국 등 담당 부서나 책임 있는 관리자들에게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고인이 사망 전 MBC 관계자 4명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라고 한다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저희에게 알려달라.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유족께서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MBC는 진상 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유족 측은 즉각 반박했다. 30일 KBS와 인터뷰에서 오요안나가 극단 선택 전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사실을 “사내에 밝힌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족 측은 MBC가 오요안나의 사망 직후 부고를 내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했으면 좋겠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MBC에 진상 조사 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MBC의 태도에 여론도 들끓었다. 관련 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는 MBC를 비판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여권도 가세했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8일 “MBC는 반성과 책임은커녕 면피와 책임 전가로 일관하고 있다”라는 논평을 냈다. 안철수 의원은 29일 페이스북에 “이번 사건에 대한 비판을 언론 탄압으로 호도하는 것은 고인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윤상현 의원은 1일 페이스북에 “(오요안나 사건에) 정치색을 입히는 것을 보면 (MBC에) 최소한의 도덕성과 책임감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라면서 고용부와 인권위가 나서라고 촉구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