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도(79)씨는 설에도 폐지를 줍는다. 영하 10℃ 가까운 기온에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쉬는 법이 없다. 30일 아침, 군밤 모자에 흙 묻은 남색 점퍼 차림으로 인천 부평역을 찾은 정씨는 길가에 버려진 박스를 펼쳐 오토바이에 차곡차곡 쌓았다. “8시간 일하면 만원을 벌 수 있다”며.
어느새 짐칸에 실린 폐지 부피가 오토바이만큼 커졌다. 정씨는 오전 11시가 되자 기다린 듯 박스 한 장을 꺼내 줄을 섰다. 앞뒤엔 노인 150여명이 무언갈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건 댁에서 따뜻하게 끓여 드시고요.”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대표 이선구 목사) 자원봉사자들이 떡국 떡과 사골곰탕, 김치를 비롯해 각종 생필품을 어르신들의 장바구니, 박스 등에 담았다. 봉사자들은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홀몸 어르신 노숙인 등에게 점심을 제공하는데, 이날은 한파가 매서워 대체식을 나눴다. 봉사자들 뒤엔 ‘2025 설날 사랑의 떡국 나눔 잔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떡국 나눔 대열에선 팔순을 넘긴 노인,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천에 사는 이영자(82)씨는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 오고 있는데 바깥바람 쐬면서 운동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어 좋다”며 “집에만 있으면 적적하다. 여기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재미있다”고 반색했다. 역 인근에서 왔다는 최명준(가명·63)씨는 “자녀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며 “비록 혼자 보내는 설이지만 오늘 나눔을 덕분에 외로움을 덜었다. 집에 가서 오랜만에 떡국에 밥까지 말아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준비된 후원품은 나눔 시작 30분 만에 모두 떨어졌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총괄팀장인 엄재형 목사는 “혹여 후원품을 받지 못하실까 봐 한두 시간 전에 오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며 “명절인데 혼자 나오셔서 후원품을 기다리시는 홀몸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진다”고 했다.
본부는 31일엔 서울역에서 무료급식시설 따스한채움터와 떡국 나눔 잔치를 펼친다. 지난 28~29일엔 인천 서구 계양구 주안역에서 떡국과 밑반찬 생필품을 나눴다.
인천=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