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칩 선두주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 돌풍에 휘말려 하루 만에 800조원 넘게 증발했다. 세계 1위였던 시총 순위는 3위로 내려갔다.
엔비디아는 27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거래소에서 전 거래일 종가보다 16.97%(24.20달러)나 폭락한 118.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됐던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미국 시장분석업체 컴퍼니스마켓캡에서 이날 뉴욕증시 마감 종가를 반영한 엔비디아의 시총은 2조9000억 달러로 감소했다. 전 거래일인 24일 대비 5890억 달러(약 846조원)나 줄어든 셈이다. 시총 순위에서도 ‘3조 달러 클럽’을 유지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로 밀렸다.
엔비디아의 주가를 하방 압박한 것은 단연 딥시크 AI 모델의 가성비다. 딥시크가 자사 AI 모델 ‘V3’에 투입한 비용은 557만6000달러(약 80억원) 수준으로, 관련 기술 개발에 수십조원까지 들이는 빅테크 기업의 투자 비용보다 현저하게 적다.
이로 인해 AI 모델 개발에 필수적으로 여겨졌던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을 지배했다. 엔비디아는 2022년 11월 미국 기업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의 등장 이후 2년 넘게 활황을 탄 AI 강세장의 최대 수혜주다.
엔비디아는 A100과 H100 등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이어 지난해 4분기부터 신형 AI 칩 블랙웰을 출시해 세계 기업들에 공급했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60%를 넘었다.
딥시크는 엔비디아에서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해 중국용으로 출시된 H800 칩 등 상대적으로 저성능 모델로 자사 AI를 훈련하고도 미국 기업들의 것과 비교해 유사하거나 능가하는 성능을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딥시크의 AI 모델에 대해 “고성능 칩과 방대한 컴퓨팅 능력, 막대한 전력에 의존해 온 현행 AI 사업 모델에 대한 혁신적 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즉각적인 우려를 일으키게 했다”고 평가했다.
딥시크의 등장은 뉴욕증시를 강타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3.07%(612.47) 하락한 1만9341.83,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9.15%(488.70) 급락한 4853.24에 마감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