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심각하게 위협받는 법치주의

입력 2025-01-26 18:23

트럼프 2기가 출범했다. 전 세계가 공포 아닌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 중에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취임하자마자 4년 전 의사당 폭동 사태로 기소된 자신의 지지자를 사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다. 당시 경찰관을 폭행한 중범죄자를 포함해 1500여 명을 사면하고 14명을 감형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 회의가 열린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의사당을 점거하며 폭동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40명 이상이 부상하고 폭동 가담자 4명과 경찰관 5명이 직간접적 영향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폭동 가담자 약 1500명을 기소했다. 이 중 12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최고 형량인 징역 22년을 받은 사람은 폭동을 주도한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의 전 대표였다. 그는 의사당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의사당을 공격할 갱단을 조직하는 등 폭동을 배후조종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가 폭동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4년 만에 대한민국 법원에서 극우세력의 폭동이 재현됐다.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폭동을 저지하던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벽돌을 던지는 등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폭동으로 다친 경찰이 51명이라고 한다. 폭동 가담자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인 18일 시위를 저지하던 경찰 34명을,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새벽에 법원 침입을 저지하던 경찰 17명을 다치게 했다. 법치주의의 상징인 법원이 폭동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체포된 폭동 가담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있고, 법원은 대부분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 공용건조물침입죄, 공용물건손상죄 등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소요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해서 폭행, 협박, 손괴 행위를 한 경우 처벌하는 범죄인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죄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반대해서 1986년에 일어난 인천사태가 지금까지 소요죄로 처벌된 마지막 사례이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도 소요죄 적용이 검토됐지만, 최종적으로 검찰이 적용하지 않았다. 소요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한 지방의 평온 또는 안전을 해할 정도의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폭동 사태가 한 지방의 평온과 안전을 해한다고까지는 보기 어려워서 소요죄 적용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걱정되는 점은 과연 배후를 밝힐 수 있겠느냐다. 배후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면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임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다행인 건 정치권과 극단 세력의 어떤 현혹에도 휘둘리지 않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행동하는 시민이 아직은 많다는 점이리라.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