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사업을 시작한 영세 자영업자 중 4년 넘게 영업을 지속한 비율은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 사례는 매출 부진·파산 등 경제적 이유로 폐업한 ‘비자발적 폐업’이 대부분이었다. 장사를 접은 ‘전직 사장님’ 중 성공적으로 새 일자리를 찾거나 다른 사업을 시작한 인원은 3분의 2에 그쳤다.
2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김민섭 KDI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경제정책저널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영업자 폐업 이후 직업 경로 분석’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은 한국노동패널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2000~2020년 고용원 50명 미만의 중소 규모 사업체를 운영한 15~64세 자영업자 2928명의 폐업 시점과 사유, 향후 진로 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영세 자영업자의 50.9%는 사업 지속 기간이 4년 이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사업을 5년 이상 지속한 비율(49.1%)은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애써 시작한 사업을 얼마 운영하지 못하고 다시 경제적 불안 상태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해당 통계는 영업 중인 업체를 포함해 집계한 ‘사업 지속 기간 분포’로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에 수록된 생존율과는 의미가 다르다. 다만 유사한 경향은 기업생멸행정통계상 생존율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신생기업의 5년 생존율은 34.7%에 그쳤다. 새로 생긴 기업 중 3분의 2 가까이가 5년 안에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처럼 빈번한 폐업은 대부분 자발적 사유보다 경제적 사정 때문이었다. 논문은 폐업 자영업자의 59.1%가 매출 저조, 파산, 일감 부족 등 경제적 요인을 원인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결혼이나 건강 악화 등 개인·가족의 사정으로 인한 폐업은 17.2%에 그쳤다. 더 나은 일자리나 직업을 찾아 폐업한 비율은 15.9%로 그중 가장 적었다.
폐업 이후 경제활동 전선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장사를 그만둔 자영업자의 39.9%는 폐업 후 임금근로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분석됐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 재창업에 나선 비율도 27.8%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업 상태를 유지하거나 경제활동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은 비중이 32.3%에 이르렀다.
특히 자영업자가 여성이거나 나이가 많을 경우 새로운 진로를 찾지 못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여성 자영업자는 폐업 후 경제활동 전선에서 물러나는 비율이 남성보다 2.4배나 높았다. 고령 자영업자의 경우 나이가 한 살 많아질수록 폐업 후 재창업·재취업 확률이 각각 1.8%, 2.7%씩 감소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현재 가입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제도를 정비하고, 자영업자들의 경제적·인구학적 특성을 고려해서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