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하며 여소야대 상황에 놓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야당과 적극적인 소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수년간 자민당 내 아웃사이더로서 쌓아온 친분을 활용해 야당 인사들을 만나고 야권이 제시한 각종 의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이런 시도에도 지지율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어 정권과 각을 세우려는 야권의 협조를 얻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시바 총리는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의 마에하라 세이지 공동대표와 비밀리에 회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이시바 총리는 유신회의 간판 정책인 교육 무상화에 협조 의사를 밝혔다.
이에 앞서 12일 추가경정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도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에게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의 면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자민당은 유신회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교육무상화’와 관련한 협의체 설립에 합의했다. 유신회는 추경 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지며 화답했다.
자민당(191석)은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공명당(24석)과 의석을 합쳐서도 과반(233석)에 미달했다. 야당 난립으로 이시바가 총리직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국 운영을 위해선 야당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자민당은 우선 과거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협조적이었던 제3야당 국민민주당과 공조를 타진했다. 국민민주당이 요구한 소득세 부과 기준(103만엔)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며 부분연합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세부 사안을 두고 국민민주당은 소득세 부과 기준을 178만엔까지 올려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은 세수 감소 등을 이유로 123만엔으로 인상하는 데 그쳤다. 아사히는 “자신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민주당의 요구는 거세지는 반면 자민당은 손을 놓고 있다”며 “국민민주당을 견제하기 위해선 유신회의 관계 구축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총리가 마에하라 공동 대표 등 유신회 핵심 간부들과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5번이나 도전할 정도로 당내 비주류로 분류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아베 신조 총리 등 당 주류에게 배척받은 대신 야권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갖게 됐다. 이는 여소야대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일본 언론의 평가다. 이 때문에 지난해 총선 이후 나왔던 조기 총선 관측도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선거 앞두고 대결 태세 야당…이시바 지지율도 하락세
이시바 총리가 야당과 줄타기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곤 있지만 내각의 장기적 유지 가능성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여름 도쿄도의회 선거와 참의원 통상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야당에서 계속 협조적으로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신회는 자민당 2중대를 자처했던 바바 노부유키 대표가 중의원 선거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어 신임 대표로는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강조한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가 선출됐다. 국민민주당도 당의 기원이 과거 자민당과 양당 체제를 구축했던 민주당에 있는 만큼 자민당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엔 부담이 크다. 특히 당의 핵심 지지 기반 중 하나인 일본 최대 노조단체 렌고가 자민당과의 과도한 연대를 불편하게 보고 있다. 총리 주변에선 “야당이 선거 전 대결 구도를 만들어 올 것”이라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이미 야당은 24일 소집된 올해 첫 정기국회에서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문제 등을 적극 거론하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시바 총리의 지지율은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사회조사연구센터와 함께 18~19일 전국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이 28%를 기록했다. 작년 10월 내각 발족 이후 처음으로 30%를 밑도는 결과다.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직전 조사와 같은 53% 수준이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자민당은 20%로 국민민주당(15%) 입헌민주당(11%)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이 같은 기간 1103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3%로 전월 대비 3%포인트 떨어졌다. 요미우리신문(40%) 교도통신(35%) 등에서도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