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이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PC방에 모여 게임하던 모습이 찾기 힘들어진데다,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들일 매력도 찾기 어렵다. 게임사들은 PC게임의 주요 홍보 창구인 PC방이 내리막길을 걷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저씨 자리 없어요?”…그때 그 시절 PC방 어땠길래
PC방은 1990년대 말 전국에 초고속인터넷망이 보급 되면서 높은 사양의 컴퓨터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실시간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리니지’ ‘메이플스토리’ 등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PC방 이용률도 덩달아 급증했다. 화려한 그래픽을 감당할 높은 사양과, 온라인에서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속도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PC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1020 세대의 대표적인 놀이문화 장소로 떠올랐다. 전국 PC방 매장 수는 2001년 2만3548곳까지 늘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15 게임백서). 당시 편의점 숫자는 3000개에 불과했다.
서울 강남구 한 대형 PC방에서 만난 24년 차 게이머 김준수(33)씨는 “처음 PC방에 방문한 건 아버지를 따라서 갔던 9살로 기억한다”면서 “중학생 때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PC방으로 뛰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PC방에 자리가 없으면 높은 레벨이나 아이템 스펙이 좋은 게이머 뒤에서 구경만해도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이젠 “손님이 없어요”… 줄줄이 문 닫는 PC방
PC방 열풍은 10여 년만에 식기 시작했다. 원인은 복합적이나 PC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트렌드가 바뀐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PC방이 고위험시설로 지정되면서 이용률도 확 줄었다.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PC방 수는 2019년 1만1871개, 2020년 9970개, 2021년 9265개, 2022년 8485개로 절정기의 3분의1까지 줄었다.
그나마도 빈자리가 많다. PC방 게임 통계 사이트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전국 PC방 가동률은 2019년 23.4%에서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2020년부터 18.4%, 2021년 16.5%, 2022년 15.6%로 계속 낮아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2023년 19.3%, 지난해 19.5%로 회복했지만 PC방 수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도 팬데믹 이전 수치를 회복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년 오르는 고정비도 PC방 운영의 어려움을 더한다. 2022년 전국 PC방 1000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고정비용 상승’이 가장 큰 경영 악화 원인(59.5%)으로 꼽혔다. 정부에 인건비와 월세 등 고정비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PC방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A씨는 “PC방 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체감한다”면서 “홍대, 성수, 명동처럼 외국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고선 내수 중심으로 장사하는 사장님들은 대부분 힘들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신규 창업을 비롯해 전국 매장 수도 줄었다”며 “헬스와 마찬가지로 PC방 시설업은 좋은 기기를 갖다 놓아야 하는데 창업 비용, 관리비, 고정비가 모두 올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PC방 고사 위기에 게임사도 고심
수년 전만 해도 게임 업계에선 PC방 순위를 통해 PC 온라인 게임의 흥행 정도를 가늠했다. 게임사들은 PC방에서 게임에 접속하는 이용자들에게 전용 특전 아이템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PC방 순위 끌어올리기에 공을 들였다.
PC방은 신작 출시 후 유저를 확보하는 핵심 창구이기도 하다. 어깨 너머로 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게임에 유입되는 모객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삼삼오오 모여 게임할 곳을 찾는 청소년에게 PC방은 최적의 장소였다.
손쉬운 마케팅 수단이었던 PC방 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신작 PC 게임을 준비하는 국내 게임사들도 한숨이 늘고 있다. 최근 국내 게임 산업계 트렌드가 모바일에서 다시 PC와 콘솔로 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국내 게임사들은 신작 출시 후 PC방 점유율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오랫동안 여겨왔다. PC방에서 함께 플레이하기에 적합한 대전, 협업 게임의 활성화를 위해 게임사가 PC방 거점의 대회를 직접 열기도 했다”면서 “팬데믹 이후 이러한 움직임이 크게 위축됐고 PC방 무료 지원 이벤트 같은 소극적인 방법으로 홍보 방식이 바뀌는 추세”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게이머가 PC방을 떠난 원인으로 고성능 PC의 높은 가정 보급률과 게임 트렌드 변화를 꼽는다. 팬데믹 당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개인 PC를 구입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국내 가정 PC 출하량은 2021년 117만대였는데 이중 15만대가 고성능 게이밍 PC였다. 게이밍 PC 비중은 전년 대비 무려 23.5%나 늘었다.
게이머의 눈을 사로잡을 PC 신작도 없다.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PC방 점유율 상위 10위에 오른 국내 게임 중 가장 최근 출시작은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2018년 11월·8위)’다. 가장 오래된 게임은 출시 22년차인 넥슨의 메이플스토리(2003년 4월·6위)였고 국내 게임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2017년 12월·4위)’는 올해로 서비스 8년째를 맞았다.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외국산 ‘리그오브레전드’는 14년 차 게임이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PC방이 어려워진 이유에는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 소비 패턴 변화, 인건비 증가, 필수재로서의 기능 축소 등도 있다”며 “과거 부흥기로 돌아가려면 10·20세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가족 단위의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신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 거점마다 e스포츠 중계 시설을 갖춘 전용 PC방 구장을 만드는 등 독특한 변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