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는 ‘제2의 알래스카’?…‘얼음 섬’은 어쩌다 트럼프 눈에 띄었나

입력 2025-01-27 16: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린란드 지도를 합성한 일러스트. 연합뉴스

북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자리 잡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섬. 영토 대부분이 빙하로 덮여있는 거대한 얼음 땅. 그린란드는 그동안 웬만한 국제정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크게 관심이 없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정치인 한 사람의 집착으로 그린란드의 몸값과 지명도는 수직상승하고 있다. 바로 미국 새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그린란드 인근의 빙하.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에 대한 의지를 꺾고 있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노선의 키워드는 항상 ‘미국 우선주의’였지만 엄연히 동맹국 덴마크의 자치령인 영토에 대해 노골적으로 매입 의사를 밝히리라고 예상한 이는 적었다. 제국주의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방주의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진지하게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린란드는 얼음 땅이지만 전략적 요충지다.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여왔다. 미국은 1941년부터 그린란드에 군사기지를 운영해왔다. 특히1951년 건립된 툴레 미군 공군기지는 북극권에서 군사 작전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 운영 핵심지다. 그린란드는 북극해와 대서양을 연결하고 있어 북극항로와 가깝다. 북극 얼음이 감소하면서 새로운 국제 무역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희토류 등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

트럼프는 지난 20일 취임 직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 “국제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미국)가 그린란드를 통제해야 하고 덴마크도 (미국의 구상에) 함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란드 주변으로 중국 선박과 군함이 깔려 있다. 덴마크 입장에선 그것(그린란드 안보)을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고 했다.

트럼프의 주장처럼 그린란드는 미국의 안보에 중요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최신호에서 “그린란드 매입은 미국에 중요한 지역을 지배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야망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대국들이 다시 한번 세계 정상의 중요 항로, 해양, 섬, 자원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도했다.

그린란드 이갈리쿠 정착촌에 걸려있는 그린란드 국기. 연합뉴스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는 트럼프 이전에도 역사가 있었다. 미국은 1867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 시절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이후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렸다.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는 720만 달러에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크림 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한 러시아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를 앞세우며 북미 대륙 전역으로 영토를 넓히려던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미국은 알래스카 매입이 대성공으로 확인되자 북극권의 다른 지역에도 눈을 돌렸는데 그린란드만 한 요충지가 없었다. 미국은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매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의회에서 공화당의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자, 미국은 1941년 그린란드와 방위 협정을 체결해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미국은 그린란드에 군사 시설을 유지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트루스소셜에 올린 뉴욕포스트 사진. 트루스소셜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을 넘어 아예 매입하려고 하고 있다. 안보, 경제적인 이유에 더해 트럼프 입장에서 영토 확장만큼 눈에 띄는 업적도 찾기는 어렵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다. 이미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인 트럼프에게는 역사에 남을 만한 거대한 치적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재임 1기 당시엔 2019년에도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그린란드 주민들의 동의 여부다. 그린란드는 2009년 덴마크와 합의로 제정된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다. 그린란드는 약 5만600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약 90%가 이누이트 원주민이다. 이들 중에는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편입되는 것을 희망하는 것도 아니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의 “우리는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 덴마크인도 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 것이 그린란드 주민의 ‘민심’을 보여준다.

덴마크 정부는 트럼프의 기세등등에 전략적으로 맞대응을 자제하곤 있지만 불만이 수면 위로 터져 올라오고 있다.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최근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는 나라가 작건 크건 간에 모두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는 국제적이며 규범에 기반을 둔 시스템에서 살고 있다”며 “얼마나 강대국이건, 어떤 나라이건 간에 그저 자신들이 원한다고 해서 제멋대로 갖는 그런 국제 규칙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덴마크 정치인인 앤더스 비스티센 유럽의회 의원도 지난 22일 공개 성명을 내고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설명할게. 트럼프씨, 꺼져줄래”라고 비난했다.

타임은 “이전의 경우와 달리 덴마크는 트럼프 (매입 의사)를 수용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덴마크의 자존심, 그린란드 원주민 공동체가 (매입) 의사 결정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1867년 알래스카 매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