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하면 “경의” 불리하면 “사법살인”… 여야의 정략적 ‘법원 때리기’

입력 2025-01-27 16:00

여야 정치권이 사법부 결정에 대해 아전인수식 평가를 내놓은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때면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치켜세우면서 자신들의 이해에 반하는 결론이 나오면 “사법 살인” 등 거친 표현을 써가며 윽박지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가 ‘사법 불신’을 조장하고 법치주의를 흔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들어 ‘사법부 때리기’에 적극적인 건 국민의힘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부터 구속영장 발부까지 법원 결정에 사사건건 트집 잡는 건 물론 사법부 전체를 겨눈 비판 목소리까지 공공연히 내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9일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가 윤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권력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사법부,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들”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의원도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직후 발생한 서부지법 폭력사태와 관련해 “사법부는 남 탓하기 전에 자신이 법치주의 위기를 자초한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사법부 때리기에 가세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순형 서부지법 부장판사가 윤 대통령에 대해 첫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영장에 군사상·직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 승낙 없이 압수 수색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제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한 것을 “판사가 법 위에 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는 앞서 2019년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재판장이던 이 부장판사가 자신의 강원랜드 채용 청탁 혐의에 무죄 판결을 내렸을 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정의를 실현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정한 판결을 내려준 사법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었다.

입맛대로 사법부를 재단하는 건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15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선고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실형이 선고되자 민주당에서는 “사법 살인시도”(김민석 최고위원) “판사에 의한 국민주권침해”(김용민 의원) 등 날 선 발언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열흘 뒤 위증교사 1심 선고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받자 이 대표는 “진실과 정의를 되찾아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공식 논평에서 이 대표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에 대해 “사필귀정의 판결”(조승래 수석대변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국민의힘도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유죄 판결에 대해선 “방탄의 둑을 겹겹이 쌓아도 정의의 강물을 막을 수 없다”(추경호 원내대표) “오직 법리와 증거,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의해 내린 판결㈜(김혜란 대변인) 등 칭찬 일색이었지만, 위증교사 무죄 판결에는 “위증교사 죄목을 형법에서 차라리 없애야 한다”(박정훈 의원)는 날 선 반응도 나왔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26일 “여야가 걸핏하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등 정치적 사안을 사법부로 떠넘기면서 정작 재판 결과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 비판이 당장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상당한 후폭풍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치와 사법 질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인데 정치권이 사법 불신을 조장한다면 민주주의가 병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