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신영화를 직접 연출하면서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남녀의 애정행각 장면 등을 담은 사실이 파악됐다. 북한 내부에서 점차 확산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낸 연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일 영화 ‘72시간’을 상영했다. 72시간은 지난해 2월 공개된 전쟁영화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최고 사령관이던 김일성의 명령을 받고 남한으로 진격한 ‘105땅크 사단’이 72시간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김 위원장이 중국영화 ‘장진호’를 보고 “저런 영화를 못 만드냐”고 질책했고, 이에 북한이 1억달러가량을 들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72시간은 김 위원장이 직접 연출을 맡은 것으로 돼 있다. 조선중앙TV에 나온 영화 도입부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영화의 개념과 종자를 주셨을 뿐아니라 친히 장면 대본들까지 집필해 주시면서 영화창작의 모든 공정을 정력적으로 지도해 주시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배우 선정과 연기 형상, 특수분장과 촬영기교를 비롯한 형상의 모든 요소들이 비상히 높은 경지에서 훌륭히 완성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 주신 위대하신 원수님”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기존 북한 드라마, 영화에 등장하지 않던 남녀의 애정행각 장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특히 남한 인물들을 표현할 때 노골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영화 도입부에 남측 장교와 그의 연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탈의하는 장면, 침대에서 입을 맞추는 듯한 모습 등이 등장한다. 또 내용과 무관한 남측 여성의 샤워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북한군 중대장과 체신소(우체국) 직원이 이마에 입을 맞추는 장면도 있었다. 과거 북한의 인기 영화였던 ‘도시처녀 시집와요’에서 남녀 주인공의 포옹 장면, 드라마 ‘불길’ 속 남녀 주인공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장면과는 비교된다.
이에 대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은은 그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통해 남한 문화를 경계해왔다”며 “72시간에도 남한 영화처럼 애정행각 장면 등을 넣어 한류의 영향력을 대체하고 김정은 체제의 문화를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내내 남한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점도 남한 문화의 영향력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극 중에서 6·25전쟁을 남한의 침략에 의한 것으로 그렸다. 또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남측 군대를 무기력한 모습으로 연출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